수도사의 제의를 닮은 커피, 카푸치노카푸치노의 유래를 찾아서
piux22. 12. 26 · 읽음 805

12세기 말, 이탈리아 아시시(Asisi)에 조반니 베르나르도네(Giovanni Bernardone)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나고 자란 그는 어느 날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고 입고 있던 옷까지 아버지에게 돌려준 뒤 걸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낡고 허름한 옷에 맨발로 다니며 가난한 삶을 자처했고, 모든 생명체를 신이 창조한 피조물로 보고 형제, 자매라고 불렀다. 길을 가다가 만난 새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고, 사람을 헤치던 늑대를 찾아가 길들였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바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San Francesco d’Assisi, 1181~1226)이다.

새에게 설교한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화를 담은 성화.

당시 많은 사람이 그를 추앙했다. 따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가 설립되었고, 수도회의 규모는 나날이 커졌다. 규모가 커지면서 애초 성인이 지키고자 했던 뜻이 잘 안 지켜진 모양이다. 16세기 프란체스코 수도사 중 한 명인 마테오 다 바스키오(Matteo da Bascio)는 어느 날 수도회가 초기 의도와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게시가 담긴 꿈을 꾼다. 그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추구했던 삶의 태도와 규율을 더 엄격하게 지키자고 주장하나, 자신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자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교황청에 탄원을 올렸고 바티칸은 마테오와 그를 따르는 수도사들이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나와 새로운 수도회를 만드는 것을 승인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수도회가 ‘모자 달린 망토'라는 뜻을 지닌 카푸친(Cappuchin) 수도회다. 그들은 프란체스코 성인의 규율을 최대한 본받기 위해 그가 생전에 즐겨 입던 모자 끝이 뾰족한 망토를 입고,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다른 갈색 제의를 택했다. 카푸친 수도회는 음주를 ‘악’이라 규정하고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흡사 이슬람 신비주의자들과도 닮아 있었다. 알코올에 취해 흥청거리던 유럽에서 커피로 각성하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던 고집스럽고 꼿꼿한 수도사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Photo by Justus Menke on Unsplash

이후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사를 닮은 커피가 등장하는데, 카푸치노(Cappunchino)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얹은 카푸치노는 18세기 전후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커피 메뉴 중 하나로, 우유 거품을 얹은 커피의 색깔이 이들의 갈색 수도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 모양이 제의에 달린 후드 모양과 비슷해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이탈리아어로 카푸치오(cappucio)는 후드라는 뜻). 카푸치노의 탄생이 카푸친 수도사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수사가 입던 제의에서 커피 메뉴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흥미롭다. 카푸치노는 라테보다 커피 맛이 진하고 거품은 성근 것이 특징이다. 카푸치노를 제대로 만드는 카페에선 지금도 카푸친 수도사의 제의를 걸어 놓고 그 색깔에 맞춰 커피의 양과 우유의 양을 조절하며 농도를 맞추기도 했다고. 카푸치노의 색깔이나 거품의 모양에 이 정도로 집착한다는 게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전통을 고수하며 카푸치노를 만들었던 이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카푸친 수도사의 제의와 색상도 모양도 꼭 같아야 해. 그래야 진정한 카푸치노 맛을 낼 수 있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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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와 커피에 진심인 카페지기,「커피오리진」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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