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솔나무(crimson bottlebrush)는 꽃이 병 닦는 솔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식물이다. 외우기 쉬운 이름이긴 하지만 아무리 닮아도 그렇지 이름을 병솔이라고 짓다니. 별명 같은 본명이다.
병솔나무의 속명은 칼리스테몬(Callistemon)이다. 아름답다는 뜻의 칼리스(callis)와 수술이라는 뜻의 스테몬(stemon)이라는 그리스어 합성어로 ‘아름다운 수술’이라는 뜻이다. 꽃잎이 없으며 빽빽한 수술이 특징인 꽃을 찾자면, 자귀나무도 비슷하다. 꽃잎이 없는 대신 핑크색 짧은 술이 펼쳐진 모양의 꽃인데, 이 식물의 학명은 비단 꽃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따와 자귀나무 꽃 특유의 반짝이는 비단 실뭉치 같은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학명조차 병솔나무는 고작 ‘아름다운 수술’이고 자귀나무는 ‘비단 꽃’이라니. 병솔나무도 조금 더 근사한 이름을 가질 순 없는 걸까?

마냥 예쁘기만 한 이름도 있다. 다육식물 유통명을 살펴보면 샤인, 오로라, 페스티벌, 루비, 러블리,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팬시한 이름이 많다(심지어 ‘테슬라’라는 이름의 다육이도 있는데, 테슬라 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에케베리아속 다육 식물들은 이름표를 붙여주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형이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절화 시장에서는 장미가 대표적이다. 유통명이라는 건 애초에 상품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대중적이면서도 임의적이라 식물의 고유성을 충분히 담지는 못한다. 병솔나무는 에케베리아나 장미처럼 품종이 많지는 않아서 굳이 아이돌 같은 작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병솔을 닮은 병솔나무처럼 생김새에서 이름을 따오는 것은 가장 흔한 작명 방식이다. 매의 발톱을 닮은 매발톱, 박쥐를 닮은 박쥐란처럼. 또 열매를 먹으면 방귀가 나와 뽕나무, 가시가 엄해 보여서 엄나무(지금은 음나무로 불린다) 등 아재 개그처럼 허무한 유래를 지닌 이름도 있다. 그래도 이런 이름은 재미있다. 아무래도 나는 병솔나무만큼은 조금 더 흥미로운 이름이 주어지길 바란 것 같다. 병솔을 닮았다는 건 근사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니까. 이 매력적인 호주산 식물에 더 나은 이름이 주어지면 좋겠다. 독자분들도 아쉬운 식물 이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란다.
식물성
여러 식물과 동거중. 책 <식물 저승사자>,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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