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설악 울산바위와 인사하고 푸른 파도에 다가선다. 속초 맛집, 카페, 빵집 투어로 입과 눈을 즐겁게 한 후 그곳으로 달려간다. 여독을 풀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풍성한 원시 그늘이 타프가 되어 주고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텐트로 밀려드는 그곳은 용대 숲이란다.
황태의 고장, 인제 용대리의 매바위 인공폭포와 시원스럽게 조우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핸들을 꺾으면 곧 용대자연휴양림에 닿는다. 구불구불 진부령을 넘기 전이다. 태백산맥 북쪽, 진부령 해발 600미터에 위치한 용대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 최북단 휴양림이다. 매표소 옆의 커다란 탱크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잠시 잊고 있었으나 이곳은 최전방이고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마지막 교전이 있었던 곳이란다. 잠시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안보 기념관에서 분단국가의 현실을 되새기고 간다.
용대자연휴양림이 자리한 마을은 연꽃을 닮았다고 연화동이라 부른다. 들어서면 연화 민박, 곰두리 민박 등 사설 숙박시설이 먼저 나오고 한참을 들어가서야 휴양림 시설이 등장한다. 제일 먼저 왼편 상단에 숲속의 집이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다. 까치박달이라는 12인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4인실이다. 고광나무, 덜꿩나무, 백당나무 등 좀 생소한 나무 이름을 땄다. 숲속의 집에서 더 들어가서 왼편으로 오르면 산림문화휴양관, 계단을 내려가면 야영장이 나온다. 산림문화휴양관은 용대 휴양림의 가장 오래된 숙박시설로 4인실, 5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야영장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차단기를 지나 더 들어가면 최근 지은 연립동이 등장한다. 연립동쪽은 깊숙하게 자리한 만큼 텔레비전 신호 수신이나 통신에 장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곳을 예약하면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대신 오랜만에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하며 숲속에서 돈독한 가족애를 쌓을 기회라고 생각하자.
처음 용대휴양림을 찾았던 10년 전에는 모두 7군데에 야영장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단 하나의 야영장(예전의 3야영장)만 남아 있다. 게다가 최근 야영 덱 개수도 줄어서 이제 단 10개의 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공기 등 좋은 캠핑 환경은 그대로인데 기회는 줄었으니 예약은 더욱 치열해졌다. 용대 숲에서의 캠핑은 계절마다 낭만 포인트가 다르다. 우선 삼복더위에도 시원하니 한번 들어서면 움직이기 싫다. 하루 종일 계곡물에 발 담그고 독서삼매경. 나를 위한 최고의 피서다. 물놀이족이라면 1차로 속초 바닷가에서 파도놀이 하고 야영장 계곡에서 2차 물놀이, 잠시 휴식 후 다시 풍덩. 가을 용대는 설악산 못지않은 단풍 맛집이다. 가을이 한창 익어갈 무렵, 야영장 잣나무들은 다람쥐를 불러 모은다. 아침에 텐트 문을 열면 열심히 잣 수집 중인 다람쥐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짓궂은 아이들은 다람쥐를 잡겠다고 잠자리 채를 들고 뛰어다닌다. 이렇게 계절마다 용대 숲의 추억들은 켜켜이 쌓여간다.

눈이 내리는 용대 숲도 참 매력적이다. 주목나무, 가문비나무에 눈이 쌓이니 영락없는 크리스마스트리다. 연립동 바깥에 가득한 양치식물을 보니 여기는 또 제주 곶자왈을 닮았다. 용대휴양림 중심을 잡는 산은 해발 1,271미터의 매봉산으로, 만만치 않은 난도의 산행을 요한다. 가족과 함께한다면 야영장 주차장부터 제4야영장이 있었던 넓은 계곡까지 숲을 느끼며 산책하기 좋다. 용대휴양림은 설악 산행의 베이스캠프로도 손색이 없다. 내설악 백담사, 수렴동 계곡, 십이선녀탕 등이 지척이다. 아빠가 설악산을 산행하는 동안 엄마와 아이들은 휴양림에서 운영하는 목공예 수업 등 다양한 체험에 참여한다면 가족 모두를 만족시키는 여행이 아닐까?
루피맘
행복한 휴양림, 캠핑 여행의 전도사이자 여행 작가로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에 발도장을 찍고 있다. 저서로 < 우리는 숲으로 여행간다 > < 캠핑으로 떠나는 가족여행 > < 숲에서 놀자 >(공저) 등이 있으며, 각종 매체에 숲 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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