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도감을 읽습니다. 꽃마리나 앵초, 느티나무처럼, 식물 이름답고 무난한 글자들을 주욱 훑다가 독특하고 통통 튀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식물명을 몇 가지 살펴볼까 하는데요, 아래 보기 중 식물 이름이 아닌 것을 한번 골라보세요.

(그림 : 1. 실망초 2. 민망초 3. 좀비비추 4. 주목 5. 뚱딴지)
모두 식물 이름이다
실망이나 민망, 그리고 좀비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름이라니. 식물이 어떻게 실망 혹은 민망과 관련이 있을지, 그리고 영화에서 만나던 무서운 좀비와 어떤 접점이 있을지 궁금해지지요. 그렇지만 사실 이 이름들은 실망과 민망, 그리고 좀비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습니다.
한 종으로 정의된 식물들은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궁화나 미나리처럼요. 그런데 유명하거나 대표적인 식물과 생김새가 비슷하거나 분류상 가까운 식물은 그 대표종의 이름에 접두사나 접미사를 더해 이름을 갖게 됩니다. 무궁화와 형제쯤 되는 식물로 더운 지방에 자라는 것을 하와이무궁화,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독이 있는 것을 미나리아재비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망초’라는 식물과 유사하지만 잎이 실처럼 가는 것에 실망초, 생김새가 다소 밋밋한 것에는 민망초, 그리고 식물체가 아담한 비비추속의 한 종에는 작다는 뜻의 ‘좀’자를 덧대어 좀비비추라는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실’과 ‘민’ 그리고 ‘좀’ 외에도 식물 작명에는 다양한 단어를 조합합니다.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기준종과 조금 다른 형태나 품질을 가진다는 뜻의 ‘개’,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나도’, 자생지 환경을 나타내는 ‘산’ ‘갯’과 ‘물’, 작은 것은 ‘애기’, 큰 것은 ‘왕’과 ‘큰’, 울릉도와 같은 도서 지방에 자라는 식물엔 ‘섬’, 원산지를 알려주는 ‘한라’ ‘미국’ ‘유럽’ ‘서양’, 질이 좋거나 먹을 수 있으면 ‘참’ 등이 붙습니다. 때로는 이런 수식어가 여러 개 붙어서 푸른잎노랑낮달맞이꽃이나 애기분홍낮달맞이꽃 같은 굉장히 긴 이름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 쓰는 단어를 이름으로 갖는 식물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봐야만 할 것 같은 주목, 뜬금없는 뚱딴지 역시 식물 이름입니다. 주목이란 이름은 주목이란 단어가 요구하는 관심과는 전혀 관련 없고, 한자로 붉을 ‘주’, 나무 ‘목’을 쓰기에 그 한글 표기가 같을 뿐입니다. 붉은 나무라는 뜻의 이름은 껍질과 깊은 목재의 속살, 그리고 열매가 붉은색을 띠어서 붙은 이름이지요.
반면, 뚱딴지는 정말 뜬금없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유명한 화초인 해바라기와 형제뻘 되는 뚱딴지는 작지만 해바라기를 닮아 고운 꽃을 피우는데, 땅속을 파보면 울퉁불퉁한 덩이줄기가 있는 모습이 조금 엉뚱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해바라기속 식물은 모두 ‘해바라기’라는 글자에 수식어를 붙여 이름 지었지만, 뚱딴지만큼은 전혀 다른 이름인 것도 참 ‘뚱딴지’답습니다.
철자는 같지만 다른 의미의 단어로 착각하기 쉬운 식물 이름은 주목과 뚱딴지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를 의미하는 ‘고비’란 글자는 양치 식물 이름이기도 하고, 책을 천천히 또박또박 읽는다는 ‘낭독’은 대극과의 유독성 식물 이름이며, 낡은 옷에 생기는 ‘보풀’과 같은 이름을 가진 수생 식물도 있습니다.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리는 ‘새’라는 식물, 물속에서 헤엄치지 못하는 풀인 ‘수영’, 이름과 달리 린넨으로 ‘확실히’ 쓰는 ‘아마’와, 조카 볼에 뽀뽀해 줄 때 나는 소리와 같은 ‘쪽’도 있고요.
그저 식물 이름을 살펴본 것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식물과 한결 친근해진 기분입니다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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