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과 꽃이 없는 겨울에도 나무 이름을 알아볼 수 있을까?기와 겨울눈, 엽흔, 낙엽과 열매로 단서 찾기
조현진22. 11. 18 · 읽음 149

증명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손이나 옆구리가 아니라 얼굴 정면을 찍습니다. 개개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체 부위는 얼굴일 테니까요. 식물도 증명사진을 사람처럼 단 한 부위만 찍어야 한다면 그건 어느 부분일까요?

단 하나로는 그 식물의 주요한 특징을 전부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장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꽃입니다. 꽃은 잎이나 줄기 등 다른 기관보다 그 종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편이고, 또 우리는 꽃으로 식물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길가를 노랗게 물들이는 십자 모양 꽃이 ‘개나리’, 연꽃을 닮은 희고 탐스러운 꽃송이가 ‘백목련’인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잎이나 줄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런데 문득,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얼굴 격인 꽃은커녕 잎과 열매도 없는 겨울에는 나무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 조현진

알아볼 수 있다

앙상한 한겨울 나무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줄기와 겨울눈입니다. 이들을 통해 그 식물의 이름을 추측할 수 있지요. 줄기는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매달고 영양분과 물을 운반하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한 종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줄기가 뻗어 이루는 나무 전체의 모양을 수형이라고 하는데요, 이 수형은 종마다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어 가로수로 많이 심는 은행나무는 곧은 원줄기를 중심으로 작은 가지들이 차례로 뻗어 전체적으로 원뿔형을 이룹니다. 반면, 느티나무는 원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가로로 넓은 타원형을 이루지요. 또, 줄기의 껍질을 수피라고 하는데, 어떤 나무들은 특별한 수피를 보여줍니다. 양버즘나무는 조각조각 떨어져 얼룩무늬가 생기고, 자작나무는 하얗고 얇은 껍질이 종이처럼 가로로 벗겨지지요. 그리고 조각자나무나 탱자나무의 줄기처럼 특이한 가시가 돋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한겨울, 잔가지를 살펴보면 줄기 끝이나 잎이 달렸던 겨드랑이에 자리 잡은 작은 겨울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눈은 봄이면 피어날 꽃이나 잎, 또는 가지가 될 부분을 품고 있는데요, 이 겨울눈도 종별로 생김새가 모두 다릅니다. 비늘 조각에 겹겹이 싸여 있는 것과 그대로 드러난 것, 꽃이 될 눈과 잎이 될 눈을 따로 준비하는 종과 하나의 겨울눈 속에 둘 다 만드는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보통 꽃눈은 둥글고 잎눈은 뾰족한 편인데, 생강나무의 겨울눈에서 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겨울눈 근처에는 잎이 떨어지고 난 자국인 엽흔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엽흔도 종마다 다른 형태를 띠는 만큼 큰 단서가 됩니다. 저는 호랑이 눈 모양을 하고 있는 오동나무 엽흔을 즐겨 구경하곤 해요.

지난 계절의 흔적까지도 되짚어보아야

걸음걸이가 유난히 특이하거나 독창적인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친구는 먼발치에서 본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멀리 무난한 패션을 추구하는 친구가 서성인다면 조금 더 꼼꼼하게 살펴보아야겠죠. 마찬가지로 줄기와 겨울눈만으로 모든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남다른 수형과 수피를 가진 나무들이 분명 있지만, 비슷비슷한 녀석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겨울눈과 엽흔은 무척이나 작고 오밀조밀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고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무 근처에 흩어진 지난 계절의 흔적을 찾아보면 됩니다. 분명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열매들이 있을 거예요. 유달리 큼직하고 뒷면이 희끗한 잎사귀를 발견한다면 그 나무는 일본목련일 테고, 뾰족뾰족 밤송이가 있다면 당연히 밤나무겠지요. 물론 바람에 날려 뒤섞이고 바스러져가는 잎과 열매들을 관찰하는 일이 녹록 않긴 하지만요.

한겨울, 이름을 도저히 알 수 없는 나무를 만나면 시험을 보는 듯합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대신, 온몸으로 힌트를 전하고 있는 나무 곁을 서성이며 나름의 답안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자신의 꽃과 잎을 통해 정답을 보여주는 계절을 기다립니다. 긴장과 걱정보다는 두근거림을 안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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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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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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