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달걀. 어느 것이 먼저일까요? 낯익은 질문이지만, 정답은 늘 아리송합니다. 병아리는 달걀을 깨고 나오므로 달걀이 먼저겠거니 싶다가도, 그 알은 닭이 낳는 것이니 다시 닭이 우선일 거라고, 생각이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오니까요.
오늘은 이 질문을 식물 버전으로 드려볼까 합니다. 여기 유채가 있습니다. 이른 봄, 유채의 노란 꽃은 제주도를 노랗게 물들이고, 또 씨앗은 주방에서 쓰는 카놀라유를 만드는 재료가 되지요. 이 유채는, 꽃과 씨앗 중 어떤 것이 지구상에 먼저 등장했을까요?

씨앗이 먼저다.
유채꽃이 피어야 씨앗이 맺힐 테고, 씨앗이 자라나야 꽃이 필 테니,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유채라는 종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생각해 보면 나름의 대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에 따르면, 유채는 우리가 식탁에서 만나게 되는 낯익은 식물 두 가지, 그러니까 양배추와 배추가 서로 교배하여 만들어진 종입니다. 혹시 라이거 혹은 타이곤을 들어보셨나요? 사자와 호랑이 사이의 짝짓기로 태어난 자손인데요. 이들은 사자와 호랑이의 중간쯤 되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식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하나의 ‘종’으로 취급되지는 않습니다. 반면, 유채는 양배추와 배추의 중간 형태인 것도 아니고, 또 정상적인 씨앗을 맺고 번식을 할 수 있는 엄연한 종입니다.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두 종이 서로 꽃가루를 주고받은 결과 제3의 종이 등장한 것이지요.
그럼 이제 꽃이 먼저인지, 씨앗이 먼저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양태진 교수의 유전체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 결과, 약 1만 년 전에 양배추와 배추 사이의 가루받이가 있었고, 그 결과로 유채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 최초의 유채에서 순서를 따져보죠. 이 유채는 꽃을 피웠겠지만, 그 이전에 분명 씨앗에서 싹이 텄겠지요. 그렇다면 씨앗이 먼저일까요?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씨앗은 양배추와 배추가 만든 것이니 양배추와 배추의 종자로 부를 수 있고, 반면 이 씨앗에서 유채가 자라났으므로 유채라고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 최초의 씨앗은 유채라고 생각합니다. 유채라는 종 자체가 양배추와 배추 사이의 교잡으로 태어난 종이므로, 둘 사이에서 생겨난 최초의 씨앗부터 유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또, 우리가 씨앗을 고를 때에는 어느 꼬투리에서 나왔는지보다 이 씨앗에서 어떤 종이 자라날지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죠. 이런 통념에 따른다면 이 씨앗은 유채라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유채는 꽃보다 씨앗이 먼저입니다.
교배를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종
되돌아가 우장춘 박사의 이론을 다시 살펴보면, 서로 다른 두 종의 식물을 교배한 결과 새로운 종이 나타나는 경우가 또 있습니다. 배추와 흑겨자 사이에서는 우리가 김치로 담가 먹는 알싸한 갓이, 양배추와 흑겨자 사이에서는 에티오피아겨자라는 식물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이종 사이에서 새로운 종이 발생하는 것을 ‘종의 합성‘이라고 합니다. 배추, 양배추, 흑겨자, 셋 사이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세 식물인 유채, 갓, 에티오피아겨자를 삼각형으로 그린 것을 ‘우의 삼각형’이라고 하지요.
우의 삼각형과 종의 합성. 이 신기한 개념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별개의 종으로 알고 있는 식물 중에는 사실 이종 간의 교배로 생겨난 것이 더 있지 않을지 그리고 언젠가 생각 못한 종간 조합으로 새롭고 놀라운 식물종이 또 나타나지 않을지 하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달걀과 닭 사이에서 생각이 끊기지 않는 것처럼요.
*이번 꼭지는 우장춘 박사의 이론과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양태진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라 추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이론 및 연구와는 별개이며, 또한 저의 의견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닭과 달걀의 순서, 그리고 유채꽃과 씨앗의 순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도 다룰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함께 논의해 보고 이야기를 풍성히 만들면 좋겠습니다.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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