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하는 식물의 속사정정수진 작가가 들려주는 식물 이름의 뒷이야기
식물성22. 12. 16 · 읽음 2,237

‘육식하는 식물’이란 말은 묘한 긴장감을 줌과 동시에 여러 골똘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식충식물은 독특한 생태 때문에 식물원이나 화훼 단지를 구경할 때면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식물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가드닝 문화가 점점 발달하면서 몇 가지 식충식물은 이제 온라인으로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벌레잡이통풀은 이름처럼 통에 벌레나 개구리, 소동물을 빠뜨려 소화해 양분을 얻는 식물이다. 속명 네펜데스(Nepenthes)는 고대 그리스 문학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언급되는 네펜데스 파르마콘(Nepenthes pharmakon)에서 왔다.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물’이라는 뜻이다. 식물의 포충낭에 한 번 빠진 동물은 나오지 못하고 소화액에 젖어 서서히 분해, 흡수되는데 이 소화액에 마취 성분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끈끈이 주걱은 목이 마른 곤충에게 끈적이는 점액을 마치 물인 것처럼 속여 유인한 다음 달라붙어 서서히 분해, 흡수하는 방법을 쓴다. 둘 다 덫을 놓아 잡는 함정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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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옥풀은 식충식물 중에서도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먹이를 붙잡는다. 잎에 벌레가 앉으며 감각 털을 건드리면 조개를 닮은 잎이 다물리듯 닫히며 산과 소화액을 분비해 벌레를 분해하여 흡수한다.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해봤다면 토관을 올라와 성난 이빨로 마리오 일행을 위협하는 뻐끔 플라워(피라냐 플랜트)를 본 적 있을 것이다. 바로 파리지옥의 모습에 착안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공격을 위해 마구 달려오기보다는, 식물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숨어 있는 자리를 지나갈 때 뻐끔대며 물어뜯는 공격성이 특징. 누구든 뻐끔 플라워가 잠복한 토관 위를 지날 때면 조마조마함을 느꼈을 것이다.

식물이 빠르게 움직이고, 심지어 그 목적이 육식이란 사실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넘어 모종의 두려움을 주었다. 뻐끔 플라워와 달리 실제 식물인 파리지옥은 훨씬 신중히 움직인다.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다. 촉각 자극의 빈도나 횟수 및 시간 간격이 일정 조건을 갖춰야만 잎을 닫고, 기왕이면 더 배부른 식사(?)를 위해 날지 않는 묵직한 곤충(개미, 거미, 딱정벌레)을 선택적으로 잡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그리 잽싸게 닫히지는 않는다. 사람이 잡아주어도 너무 큰 먹이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몇 번 사냥을 시도하고 나면 포충엽을 분리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식물들이 소모하는 활동 에너지 이상으로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동물에 준하는 정도의 공격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식충이라는 방식은 본래 늪지대에 자생하던 식물 종류가 물에 씻겨 소실하는 질소를 보충하기 위해 택한 전략이 이어져온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영양이 충분한 환경에서 살면 벌레를 사냥하지 않기도 하며, 교배종 중에는 더 이상 식충을 하지 않는 식충식물도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식충식물에 대해 떠올리는 긴장감 넘치는 상상은 역시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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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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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식물과 동거중. 책 <식물 저승사자>,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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