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친구가 사루비아 꽃을 따 달달한 꿀을 맛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걸 배운 후로는 봄만 되면 빨갛게 핀 사루비아 꽃을 따 꽃 뒷부분을 혀에 대며 멍 때리곤(?) 했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사루비아는 없고, 대신 다른 빨간 꽃이 있길래 그 꽃을 따서 혀에 대며 놀았다. 사루비아만큼 오래가진 않지만 단맛이 짧게 스쳐갔는데, 오며 가며 그렇게 따도 꽃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풍성했다. 4월 말부터 5월까지는 봄의 그득한 온기와 함께 철쭉 꽃을 만나볼 수 있다. 도시에 산다면 아파트 단지나 빌딩 숲 조경석 사이로 쏟아질 듯 피어나는 철쭉 꽃이 무척 익숙할 것이다.

철쭉이 속한 로도덴드론(Rhododendron), 즉 진달래 속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천여 종이 넘는 종류를 포함하는 거대 집단이다. 붉다는 뜻의 그리스어 로돈(rhodon)과 수목을 뜻하는 덴드론(dendron)의 합성어로 붉은 식물을 뜻하는데, 꽃 색상이 대부분 분홍빛, 자줏빛, 붉은빛을 띠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에서 철쭉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철쭉 중에서도 서양 철쭉 혹은 영산홍(왜철쭉) 재배종을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원예 가치가 높은 몇몇 식물을 따로 묶어 아잘레아(Azalea)라고 부르는데, 아잘레아는 그리스어로 ‘메마르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건조하고 배수가 잘되는 모래질의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며 그늘에 강하다. 산성비와 공해 물질 혹은 자연적인 요인으로 산성화되기 쉬운 땅과, 고층 건물이 많아 그늘 면적이 많은 도시에서는 손이 덜 가면서도 비교적 쉽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이 식물만큼 조경 식물로 적당한 게 없었을 것이다.
원예종 철쭉을 포함해 개량된 재배종 식물은 집이나 마당에서 참 잘 자라 기쁘지만, 동시에 너무 잘 자라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계기로든 기존 생태계가 갖추어진 자연에 옮겨져 자리를 잡으면 개량 과정에서 ‘벌크업’ 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자생 식물의 자리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지리산 바래봉은 원래 자생종인 산철쭉의 군락지였는데 그 곁에 외래종인 영산홍, 자산홍 등을 심어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외래종이 점차 자생종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고 한다. 때문에 생태계 회복을 위해 자생종 구역의 외래종을 전부 제거하기로 했다고. 이해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잘 모르니 차치하고 보면, 잘 자라온 생명을 강제로 제거하는 그림은 생태계 보호라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상당히 파괴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당연히 지역 주민의 거부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 빈 땅에 심은 영산홍이 자라서 지천을 덮을 때까지 걸린 시간만큼이나 이 과정의 소통에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한편 ‘철쭉’이라는 이름은 로도덴드론속 식물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명이기도 하다. 로도덴드론 식물은 그레야노톡신이라는 독성 성분이 있어 현기증과 구토, 안면마비, 환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머뭇거릴 ‘촉’, 머뭇거릴 ‘척’이라는 한자어를 조합해 척촉(躑躅)이라 부르던 것에서 우리말 발음인 철쭉으로 변형되었다고. 히말라야 등 고산 지대의 야생 로도덴드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해마다 많은 철쭉을 혀에 댔던 어린 시절에 큰 탈이 나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식물성
여러 식물과 동거중. 책 <식물 저승사자>,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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