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송보송 곧은 털 뭉치가 귀여운 강아지풀은 만져도 그리 따갑지 않고 적당히 보드라워 가지고 놀기 좋은 풀이었다. 한해살이 들풀인 강아지풀은 7~8월 꽃 피기 시작해 9월쯤엔 이삭이 고개를 숙인다. 길가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아지풀 이삭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여름방학의 추억이 몽글몽글 묻어 있는 것 같다.
강아지풀은 중국에서 개 구(狗) 자, 꼬리 미(尾) 자를 써서 구미초라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전해서 일본에선 구미초의 훈독인 ‘에노코로구사’로, 우리나라에서는 ‘개꼬리풀’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이름 대신 우리는 어감상 개꼬리보다는 훨씬 유하고 둥근 발음의 ‘강아지풀’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되었다.
한편 반려묘 등 고양이에 친숙한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강아지풀이 고양이와 연관이 많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고양이의 생명을 구해준 주인공 하루의 집 앞을 강아지풀로 채워 보은을 하는 장면이 나오며, 하루가 고양이 왕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동산에 강아지풀이 핀 풍경이 꽤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그려진다. 강아지풀은 우리가 보통 어묵 꼬치라 부르는 류의 고양이 장난감과 닮아 일본에선 ‘네코자라시(고양이 장난감)’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부른다. 실제 강아지풀로 고양이와 자주 놀아주곤 하는데, 다행히 풀에 독성이 없고 먹어도 괜찮은 종류라고 한다.

사실 강아지풀 이삭은 사람도 먹을 수 있다. 강아지풀은 볏과(사초과) 식물이며, 곡식으로 재배하는 조와 가까운 식물이다. 먹어도 무해한 정도가 아니라, 과거 흉년에는 다른 곡식과 함께 섞어서 먹기도 했다고. 볏과 식물은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로 번식하기에 꽃이 화려하지 않은 대신, 미세한 꽃가루를 잡아낼 수 있는 털이 나는 형태로 진화했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 보니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이삭 부분을 불에 그슬려 털(암술머리)를 솎아낸 후 바로 섭취하는 것이라고. 혹은 이렇게 분리한 씨앗을 곱게 빻아서 식용 기름이나 마요네즈 등과 섞어 참깨처럼 드레싱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잎과 줄기 부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 베이스의 절임 음식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먹을 수 없는 들풀이란 선입견이 깨지고 나니, 언젠가 우연히 강아지풀을 만나게 되면 위와 같은 레시피를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노는 땅’이 줄어든 요즘의 도시에서는 강아지풀을 전만큼 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하천변이나 탁 트인 평지 등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난다고 하니, 산책을 할 때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식물성
여러 식물과 동거중. 책 <식물 저승사자>,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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