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호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후 5시면 모든 하루 일과를 마치는 호주에서는 하우스 파티가 일상이었다. 호주 사람들에게 한국 보드카인 소주는 반응이 꽤 좋았는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는 자주 만취 상태가 되었다. 한 번은 술이 얼큰하게 오른 채 건네받은 오렌지주스를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게워내고 말았다. 사촌 언니들은 당시 스무살이던 나를 씻기고 재우느라 신년 카운트다운도 놓쳤다.
원래 나는 오렌지주스를 싫어했다. 어린 시절, 우리 사 남매는 델몬트 오렌지주스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 치열했던 쟁탈전 틈에서 나만 오렌지주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오렌지주스를 싫어하던 나는 호주에서의 추억(?)을 계기로, 모든 시트러스 계열을 멀리했다. 시트러스 계열을 보기만 해도 왠지 속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지인에게서 너무 좋은 향기가 나길래 무슨 향수를 쓰느냐 물었다. 록시땅의 ‘버베나 오 드 뚜왈렛’이라고 답했다. 그게 레몬버베나와의 첫 만남이다. 농장에서 직접 길러보니 레몬버베나는 록시땅의 향수를 능가했다. 짙은 청량함을 가진 이 향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잘라내면 금방 숨이 죽어 배송이 어려웠다. 그래도 향기만은 전달하고 싶어 채소 박스에 꾹꾹 눌러 담았다.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겨울을 나기는 어렵지만, 잎이 무성하게 잘 자라는 짧은 여름 시즌만이라도 레몬버베나의 진한 향기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레몬버베나 복숭아
재료 : 레몬버베나 10잎, 얼그레이 홍차잎 3g, 복숭아 1개, 꿀(생략 가능)
1. 복숭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레몬버베나를 잘게 찢어 얹는다.
2. 홍차잎을 손으로 부셔 가루처럼 복숭아 위에 뿌린다. (복숭아 당도가 높지 않다면 꿀을 살짝 뿌려주면 좋다)
노디
채소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탐구하는 노디입니다. 채소가 가진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댓글 4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