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정원 작가의 영화 속 식물 이야기 – ‘일요일의 병’
정원23. 03. 11 · 읽음 365

“꽃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일요일의 병>  영화  포스터.

*본 글은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의 병> (라몬 살라자르 감독, 2018)

키아라는 여덟 살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아나벨을 찾는다. 그리고 열흘만 같이 지내자고 한다. 친권 포기 각서에 사인을 한 뒤 받아낸 엄마와의 시간, 열흘.

열흘 동안 사랑하라고 한다면 무얼 할까. 아니, 열흘 동안 살라고 한다면 우린 무얼 할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말할까. 그걸로 부족해 사랑하는 그 사람과 무엇이라도 하고 싶을까. 떠나는 입장에서 무엇이든 주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받아본 이의 오만일 수 있다는 걸 키아라를 보며 알았다.

키아라는 키우던 개 나타샤와 일부러 진흙탕에서 구른 뒤 우물에 빠진 개를 구해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고는 아나벨에게 구출해 온 개 씻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사랑받는 모습을 연출한 키아라의 의도대로 아나벨은 키아라의 진흙투성이 이마와 머리를 씻겨준다 – 잠시.

시내에 나가 회전목마를 타는 키아라. 또다시 키아라의 의도대로 아나벨은 회전목마 타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 역할을 맡는다. 아무도 없는 회전목마에 올라탄 성인 키아라의 모습에 여덟 살 순수한 여자아이의 미소가 겹쳐진다 – 잠시. 이내 빈 회전목마가 빙글빙글 돌아가자, 어린아이를 찾는 불안한 엄마의 눈빛과 몸짓이 아나벨에게 나타난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키아라에게 아나벨이 ‘엄마처럼’ 말한다. “움직이는데 내린 거야? 위험해.” 그런 걱정이 간지럽다는 듯 키아라가 대꾸한다. “늘 더럽게 재미없는 기구라고 생각했어요.” 반항기 어린 십 대처럼 키아라는 술을 마시고 낯선 남자와 춤을 추고 품에 안긴다. 키아라는 이제 엄마의 구출을 받는 딸이 된다.

사랑의 순간은 너무나 짧게 끝난다. 사랑받아본 적 없는 키아라가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기도 하지만, 사실 사랑받고 싶었다는 절절한 고백을 할까 봐 스스로가 불안한 역설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처럼 끝없는, 엄마를 향한 아이의 순수한 사랑과 그리움.

“벌써 일요일이라고요?” 하루를 꼬박 잠으로 날려버린 키아라에게는 엄마와 보낼 시간이 하루 줄었고, 헤어져야 할 시간은 빠르게 다가온다.

Photo by Caro Rue on Unsplash

아나벨은 마당에 캄파눌라 씨앗을 심는다. “얼마 전에 사둔 씨를 심고 있어. 캄파눌라야. 꽃이지.” 척박한 토양에서도 끄떡없는 강한 꽃이라는 아나벨의 말에 키아라가 대꾸한다. “꽃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죽어가는 딸에게 아나벨은 이듬해에 피는 꽃을 약속하고 싶었을까? 떨어져 지낸 세월 동안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딸은 죽음의 문 앞에서 피고 또 피는 꽃을 희망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피고 또 핀다는 것은 지고 또 졌다는 말과 다름없다. 강하다는 것은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사라지기를, 가라앉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나벨은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된 딸에게 피고 또 피어나자고 말하지만, 키아라는 피어난 순간 속에 영원히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꽃이 취향이 아니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들린다.

Photo by saira on Unsplash

보이지 않는 영원을 꿈꾸는 키아라는 나무를 사랑한다. 키아라가 자주 오르는 산에 있는 두 그루 나무. 키아라와 아나벨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왔으며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나무들. 탯줄처럼 뿌리가 이어져 있어, 두 그루지만 결국 하나인 그 나무의 삶이 키아라에게는 영원이다. 아나벨이 키아라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하나의 대지에 연결되어 있는 나무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키아라는 아나벨에게 부탁한다. 두 그루 나무처럼 바람결에 선 채로 엄마 품에서 죽고 싶다고. 영원히 그 품에 살게 해달라고.

발가벗은 채 키아라는 물속으로 잠기고, 아나벨은 다시 새롭게 떠오른다. 이제는 키아라의 그림자가 없는 집, 키아라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그 불빛은 아나벨의 가슴으로 옮겨가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된다.

태초에 두 그루 나무가 있었다. 인간을 지키며 그 자리에 영원히 서 있을 듯한 두 그루 나무는 죽어도 산 것처럼 불멸로 남을 것이다. 숲이 자궁인 듯 흙바닥에 누워 풀린 시선으로 말하던 키아라의 음성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피곤해요.” 사랑하느라 지친 영혼은 이제 그만 쉬고자 나무 곁에 눕는다.

0
정원
팔로워

자연에서 들려오는 낱말들을 모으며 느리게 삽니다. 지은 책으로 <실용낭만 취미살이> <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떡볶이 공부책> <짜장면 공부책>이 있습니다.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