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자신들에게 부족하던 쌀을 조선에서 가져가기 위해 쌀 증산과 수탈 정책을 실시한다. 따라서 일제의 농업 정책은 곡물 위주로 이루어졌다. 채소 재배에는 큰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배추, 무, 갓, 미나리, 근대, 쑥갓, 아욱, 부추, 토란, 감자, 고구마, 오이, 호박 등 오늘날 우리가 주로 재배하는 채소 대부분은 이때에도 재배되었다.
채소의 조리법도 현재와 거의 다름이 없었으니, 배추, 무, 미나리, 오이 등으로는 김치를 담가 먹고, 아욱, 근대, 토란 등으로는 국을, 시금치, 오이, 호박, 쑥갓 등으로는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일본으로의 강제적 쌀 수출로 곡류가 많이 부족한 시대였던 만큼, 감자와 고구마가 곡류 대용식으로 서민 식생활을 영위하게 해주었다.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산야초(山野草)를 많이 캐 먹어 그 종류가 무려 300여 종에 달했다. 부족한 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야생 나물 채취가 많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고사리, 도토리, 다래, 소나무 껍질, 칡뿌리 등의 채소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석이, 능이, 표고 송이 등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식재료였던 80여 종의 버섯류도 중요한 식량이었다. 버섯으로는 대개 국을 끓여 먹거나 볶아 먹고, 또한 전으로 부쳐 먹기도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는 외래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서민들의 곤궁한 식생활과는 상관없이 조리서가 폭발적으로 편찬되고 팔린다. 일제강점기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였던 방신영 선생은 1917년 <조선요리제법>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1964년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으로 개정되어 나오기까지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여 출간되었다. 1921년 개정판에는 13종의 장아찌류, 5종의 지짐이류, 4종의 찜류 등이 채소 음식으로 소개되는데, 그 외 초와 선, 자반과 튀각, 다식이 있으며, 대표적인 채소 조리법인 쌈류도 소개되었다. 근대기의 대표적인 조리서로서, 여기에 소개되는 채소 조리법은 현대의 음식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924년에 출간된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는 우리나라 최초로 컬러 인쇄한 요리책이었다. 조선시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중 ‘정조지(鼎俎志)’를 바탕으로 중요한 사항을 가려내 한글로 옮겨 뼈대로 삼고 여기에 새로운 조리법·가공법을 군데군데 삽입했다. 63영역 790여 종의 음식 조리법을 수록했는데, 채소 음식 또한 나물, 생채, 조림, 찜 등 다양하다. 그중 채소 음식이 아닌데 나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있어 이채로운데, 쇠심줄을 불려서 데친 심나물이다. 나물류의 황화채나물과 넘나물은 원추리나물을 뜻하며, 멧나물은 들나물을 총칭한다. 나물을 조리할 때 고기를 함께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나물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출간 이후 재판을 거쳐 1936년에는 증보판이 찍혔고 1943년에는 4판이 나올 정도로 인기 요리책이 되었다.
이외에도 20세기 이후 간행된 근대 조리서로 <조선요리제법>(1917), <부인필지>(1915), <간편조선요리제법>(1934), <사계의 조선요리>(1935), <일일활용신영양요리법>(1935), <조선요리법>(1939), <조선요리학><우리음식>(1948) 등이 있다. 이 조리서들에는 기존의 나물이나 채소 조리뿐 아니라 새로운 채소 조리법이 매우 다양하게 등장한다. 근대 조리서의 채소 음식에는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며 그 밖의 다양한 명칭의 채소 요리도 있다. 근대 조리서에 나타난 다양한 채소 음식을 통해 근대기의 나물이 다양하게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물 조리법의 다양성을 공부하는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물을 많이 먹고 채식에 기반한 한식을 최고의 건강식으로 생각한다. 자칭 한식전도사. 저서로는 <채소의 인문학>, <밥의 인문학>, <조선 왕실의 밥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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