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카페

대만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소는 타이베이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융캉제(永康街) 거리였습니다.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메인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골목길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카페 야부(Café YABOO)를 발견했습니다. 건물은 꽤 오래돼 보였지만 카페가 매우 밝고 따뜻한 분위기라 눈길이 갔습니다. 비가 계속 내렸던 1월의 대만은 꽤 쌀쌀했기 때문에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에 더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라마르조코(La Marzocco)라는 회사의 스트라다(Strada)라는 모델이었는데, 2018년 당시 최신 모델이었죠.
자리에 앉자마자 물과 함께 메뉴판을 받았습니다. 손님이 앉은자리에서 주문부터 음료 서빙까지 이루어지는 풀서비스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마치 일본의 오래된 카페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친절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같은 원두의 아이스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드립 커피는 한화로 8,000원 정도였고 에스프레소는 5,000원 정도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꽤 비싼 축에 속하지만 그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적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적당한 가격

카페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죠. 어떤 카페에선 아메리카노를 2,000원에 마실 수 있지만 또 다른 카페에선 6,000원쯤 하기도 합니다. 사실 가격은 주인 마음대로 입니다. 카페가 위치한 상권을 고려하고 커피의 품질과 서비스, 원가 등을 종합해 가격을 책정합니다. 그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판단은 소비자들의 몫이죠. 소비자가 카페에서 가격에 합당한 경험을 했다면 재방문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저는 바리스타, 즉 판매자인 동시에 수많은 카페를 다녀본 경험 많은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방문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가격이 적절한지 아닌지 따져보게 됩니다. 카페 야부처럼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서빙도 받고, 깨끗한 테이블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커피 가격은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스타가 제공해준 편안한 서비스 역시 이 카페를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때론 정반대의 느낌을 받는 카페도 있습니다. 특히 관광지에 있는 카페 중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는 곳이 바다 근처라, 최근 바닷가에 규모가 큰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 곳은 음료의 기본 가격이 보통 7,000~8,000원입니다. 2명이 커피 한 잔씩 주문하고, 디저트라도 추가하면 2만 원이 훌쩍 넘는 셈이죠. 물론, 비싼 땅에 큰 건물을 지은 카페 주인의 입장에선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들 카페에선 대개 맛있는 음료보다 사진 찍기 좋은 음료, 좋은 재료를 사용한 맛있는 빵보다 빨리 구워 내느라 급급한 빵, 깨끗하고 잘 관리된 테이블과 화장실보다는 바빠서 거의 관리하지 못한 지저분한 테이블과 화장실을 볼 수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세심한 서비스 또한 기대하기 힘들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은 과연 적당할까요? 이를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그런 카페를 두 번, 세 번 찾아갈까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형제처럼 똑 닮은 두 명의 바리스타가 몇 번씩 테스트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동양적 색감과 모양의 에스프레소 잔에 나온 음료를 보니, 대만 특유의 정취가 느껴졌습니다. 커피 맛은 기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맛있었습니다. 향과 산미도 뛰어났지만, 단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압도적인 단맛이 다른 맛을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어요. 함께 주문한 아이스 핸드 드립 커피는 차 같은 느낌이 좋았습니다. 강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누구나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추출하고자 한 바리스타의 의도가 느껴지는 맛이었죠.
커피의 단맛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꽤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프레소가 달다고? 커피 잘 모른다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잘난 척 좀 그만해!'라고 말해도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향과 맛은 매우 주관적인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커피에서 느껴지는 단맛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원리가 있습니다. 커피 생두의 구성 성분을 보면, 당류(다당류와 올리고당 등)가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합니다. 로스팅을 통해 캐러멜라이징(또는 마이야르 반응) 과정을 거치면 그중 약 30퍼센트가 소실됩니다. 그래도 20퍼센트 당류가 남지 않냐구요? 사실 그 당류조차 직접적인 단맛을 내는 성분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단맛을 느끼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커피에서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미각은 맛과 농도를 생각보다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방금 위에서 이야기한 단맛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커피에서 느끼는 단맛은 당류를 통한 진짜 단맛이 아니라, 향과 질감의 복합적 산물인 것이죠.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과일 사탕을 녹여 먹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레몬이나 오렌지, 포도, 자두, 사과, 배, 대추야자 등 과일의 단향과 잘 추출된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질감이 조화로웠다는 의미입니다. 그 단향과 묵직한 질감이 입안에서 잘 섞이면 우리 뇌는 그것을 '단맛'으로 느끼는 것이죠. 향에 대한 경험과 향을 느끼는 선천적 감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쓴 커피를 누군가는 달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저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커피와 편안한 서비스 덕분에 충분히 휴식을 즐길 수 있었고, 다시 젊음의 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카페를 나섰습니다.
만얼
커피따라 여행중인 작가 만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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