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茶人)의 로망, 다실 꾸미기  내가 좋아하는 소품과 식물로 가득 채운 다실 
인선23. 01. 16 · 읽음 559

차의 시간은 이른 새벽,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어지는 주말, 한 곡의 음악을 고르고 한 권의 책을 꺼내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혼자서 차 한 잔을 내려 마신다. 

© 여인선

하지만 일상의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남다른 시간에 빠져드는 것은 쉽지 않다. 찻잔 너머로 보이는 생활의 물건들. 이를테면 아무렇게나 놓인 TV 리모컨 같은 게 갑자기 시선에 걸리기라도 하면 차 마시는 시간의 경건함과 신비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무엇보다도 생활 소음이 문제다. 나의 첫 차 마시는 공간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베란다였다. 작은 차판 하나와 다구장을 배치하니 그럴듯하게 괜찮은 공간이 됐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들이 TV 보는 소리 등 차와 나의 시간에 끼어드는 각종 생활 소음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처럼 진지하게 차 생활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윽고 차 한 잔의 아름다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꿈꾸게 된다. 

로망을 완벽하게 구현한 곳이 일본의 전통 다실이다. 일본 문화를 확립한 인물 리큐(千利休) 세속과 완전히 떨어진 차실을 고안했다. 리큐 다실은노지라고 불리는 정원의 흙길을 지나야 다다를 있는 작은 초가집 형태다. 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인데, 계절마다 차회에 쓰는 그릇, 먹는 음식, 장식할 , 족자 등을 섬세하게 고른다. 그래서 다실은취미의 이라는 뜻의 스키야(數寄屋)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 여인선

리큐 다실처럼 자연 속에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공간을 생활에서 분리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물 3, 작은 사무실을 빌렸다. 예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라스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짙은 나무로 만든 다구장과 책상, 차에 대한  각종 책을 가져다 놓았다. 오래된 빈티지 오디오 세트를 옮겨 놓고 테라스에 남천과 오렌지재스민 식물까지 들이고 나니 제법 다실다운 공간이 됐다

일단 깨끗하고 비어 있을 . 잡냄새가 없을 . 조용할 . 다실이 갖추어야 필수 조건이다. 물론 공간을 갖추었다고 완벽한 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수류화개실 법정스님의 다실 이름인데,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있다는 뜻이다. 일상의 공간 어디든 차를 아름답게 마시려 노력하면 그곳 또한 조용하고 깨끗하게, 향기롭게 만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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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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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앵커. 바쁜 일상 속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책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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