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릴 무렵 차나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첫 찻잎을 틔운다. 겨우내 추위를 견딘 나무가 온기를 느끼자마자 연둣빛 생명을 차례로 터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잎 사이로 또 다른 연한 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도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 차나무의 생명력이 가장 충만할 때 가장 위에 올라온 고운 잎만 따서 첫차를 만든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야생 차밭과 중국 운남성의 고산지대. 훌륭한 차가 나는 환경을 몇 차례 답사하며 차나무가 자연을 까다롭게 선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차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곳에서만 자란다.'고나 할까. 나처럼 차나무의 숲에 가서 살아있는 찻잎을 보고 제다(차를 만드는 과정)를 경험하고 나면 차를 한층 더 특별하게 여기고 차에 대한 애정도 커지는 경우가 많다. 차나무의 숲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되기도 한다. 직접 차밭에 가보고 차를 제다하며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아침 그리고 저녁놀이 질 무렵의 햇살이 찻잎에 닿을 때면 신령한 기분마저 든다. 찻잎의 솜털 위로 낮게 반짝이는 햇살은 볼 때마다 매번 큰 감동을 안긴다. 중국 운남성 경매산의 노오란 저녁놀, 전남 순천의 이른 아침 햇살은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고요하고 따뜻했다. '차나무는 늘 이런 특별한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자라고 있구나.'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선
채널A 앵커. 바쁜 일상 속 차를 마시는 시간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책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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