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참 아늑한 구석이 있다. 이때는 모두가 휴식을 취한다. 정원 안팎으로 꽃도 없고 싱싱한 채소도 나지 않지만 그 대신 신경 쓸 일도 없다. 식물을 갉아먹고 빨아먹는 곤충을 쫓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들이 다시 끼기 시작한다. 진딧물이다. 처음에는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더니 며칠 지나자 몇 마리가 나타나고, 얼마 안 가 떼거지로 식물의 새싹을 뒤덮어 폭풍 흡입해 버린다.
정원 어느 구석도 이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멀리 떨어진 발코니나 높다란 옥상 정원조차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이 녀석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도 하다.

진딧물은 일반적으로 알의 형태로 겨울을 난다. 알에서 부화한 진딧물은 ‘간모(桿母)’라 하는데, 진딧물 군락의 어미들이다. 왜냐하면 이 어미들은 단위 생식으로 번식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암수의 결합 없이 번식한다는 말이다. 이 단계에서의 암수 결합이란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수컷 없이도 일이 더 빨리 진행되니 말이다. 이런 단위 생식으로 40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흔히 진딧물은 알이 아니라 태생(胎生) 방식으로 세상으로 나온다. 이들의 군집이 자라서 공간이 비좁아질 정도가 되면 날개 달린 개체들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다른 ‘초지’를 개척한다. 가을에야 비로소 빛과 온도의 작용으로 암수가 있는 성체들이 만들어진다. 이들의 역할은 수정을 통해 유전자 교환이 된 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수정란이 겨울을 난 뒤 부화해 다시 간모가 된다.
종에 따라 진딧물은 갈라진 틈새나 나무 겉껍질 속 아니면 식물의 다른 부분에 알을 낳는다. 이런 장소는 시간이 지나면 봄을 대비한 적절한 출발 지점을 제공한다. 진딧물은 대다수 다른 곤충과 마찬가지로 알의 단계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 훅’ 하고 등장하는 듯 느끼는 것은 아주 단기간에 그냥 모른 채 할 수 없을 만큼 개체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도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없지만 반갑게도 박새, 무당벌레, 풀잠자리에 맵시벌까지도 이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선량한 이웃들>(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애플북스)에서 발췌했습니다.
선량한 이웃들
독일 원예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의 저서로, 정원에 사는 이웃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설명한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모든 동식물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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