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 고구마를 바라볼 때고구마 농부가 국산 고구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성배23. 08. 04 · 읽음 492

몇 년 전 9월,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 고구마 농장을 찾았다. 과일이 아닌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다.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던 시절부터 쭉 오로지 과일만 팔고, 과일에 대해서만 썼기 때문에 다른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과일만으로도 알아야 할 지식과 전해야 할 이야기가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과일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때 한 선배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더 오래 그 두려움으로 다른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농산물 유통 업체에서 온라인 MD로 근무하던 선배가 가을에 팔 고구마 소싱을 위해 경기도 여주에 가는데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농부를 만나 이야기하고 글 쓰는 일을 사랑하는 나를 알았던 형 나름의 늦은 생일 선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고구마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 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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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듣게 된 고구마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영광 없는 찬란함’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국내 고구마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건 베니하루카라는 품종이다. 고구마를 즐겨 먹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이 품종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당도가 높아 인기가 좋다거나, 영양군의 한 농가에서는 이 고구마로 경상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칭찬 일색. 하지만 베니하루카는 사실 일본 품종이다. 고구마 외에도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농산물에서 일본 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니 무슨 큰 문제일까 싶겠지만, 베니하루카는 국내에 도입된 계기가 떳떳하지 못한 게 문제다.

베니하루카는 일본 규슈 오키나와 농업 연구 센터가 규슈 121호와 하루코가네를 교배해 육성한 품종으로, 2010년 품종 등록되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주요 품종으로 자리잡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베니하루카가 재배용으로 국내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적 없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즉, 누군가에 의해 무단 반입된 것이다(샤인머스캣과 사정이 비슷하다). 2019년에 농민신문사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시・군 농업 기술 센터는 이런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니하루카의 조직을 배양해 농가에 적극 보급하기까지 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내 고구마 재배 면적의 약 40퍼센트를 베니하루카 하나가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이 같은 문제는 도덕적 해이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빈축을 살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자칫 농가와 연구자들의 품종 국산화 의지를 꺾을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품종 국산화를 위해 지금도 어딘가에서 농가와 연구자들은 신품종 육성에 힘쓰고 있다. 고구마만 해도 호감미, 진율미, 소담미, 단자미, 풍원미, 예스미 등 수십 종이 육성되었고, 일부는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베니하루카의 인기와 그로 인한 수익성을 좇아, 현재 많은 농가와 유통 업체가 베니하루카를 선호한다.

ⓒ 전성배

당시 여주에서 만난 고구마 농부는 그렇기에 더더욱 국산 품종 재배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담미, 진율미, 호감미가 그것이다. 애틋한 마음을 갖고, 해를 거듭할 때마다 각각의 특질을 기록하고 최신화한다. 실전적 재배 기술을 정립해 알리기 위함이다. 9월은 소담미가 본격적으로 수확되는 시기였다. 이 소담미가 베니하루카보다 더 나은 이유들을 나열하던 농부의 표정과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소담미는 큐어링*을 한 후 30일 이상 숙성했을 때 가장 맛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땐 밤고구마처럼 약간 퍽퍽하지만 기본적으로 당도가 좋아요. 숙성되면 당도는 더 올라가면서 식감은 부드러워지고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거죠. 베니하루카와 비교해 부족할 게 하나 없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농부를 보며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의지만큼은 결코 꺾이지 않도록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농부의 얼굴에서 보아서다.

*큐어링: 고구마를 수확한 직후 고온・고습 환경에 일정 기간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수확 시 생긴 상처와 병해충에 의한 상처가 아물도록 해 저장력을 크게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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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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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성배입니다. [격간隔刊 전성배 산문]의 연재자이며,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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