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혹독한 계절입니다. 두꺼운 옷에 목도리와 장갑을 둘러도 찬 바람이 옷 틈새로 파고듭니다. 양손을 옆구리에 낀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친구가 말합니다. “너, 사시나무 떨듯 떠는구나” 하고요. 오들 거리는 모습이 딱 그렇다는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사시나무도 추위를 많이 타서 떠는 것인지 말이에요.

사시나무가 떠는 모습
사시나무를 아시나요? 꽃과 열매가 눈길을 끄는 모습이 아닌 데다 요즘은 별로 심지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 만나본 식물일 거예요. 지방으로 떠나는 고속도로, 창밖 숲에는 푸른 나무가 무성한데요. 그 사이로 줄기가 유난히 희고 키가 껑충한 나무 여러 그루가 모여 자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시나무 종류의 하나인 은사시나무입니다.
저 멀리 산에 자라는 은사시나무를 가만히 살펴봅시다. 다른 나무는 그저 살랑거리고 말 정도의 작은 바람에도, 은사시나무는 잎사귀를 팔락 팔락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시나무속 나무 대부분은 잎이 달린 작은 줄기인 잎자루가 잎 크기에 비해 무척 긴 편이기 때문에 약한 바람에도 잎이 세차게 흔들리는 거예요. 이런 모습에서 ‘사시나무 떨듯 하다’라는 말이 유래했고요.
추위를 타지 않는 사시나무
사시나무 잎은 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게 되었을까요? 사시나무류는 건조한 지역보다는 물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많은 수분을 공기 중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증산시키기 위해 그렇게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올라간 식물체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데 쉽게 움직이는 잎이 유리하다는 가설과, 잎사귀가 흔들리며 생긴 틈으로 빛을 아래쪽까지 통과시켜 하단의 잎사귀도 충분히 광합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모두 추측일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추위를 많이 타서 떠는 건 아닐 거예요. 사시나무류가 떠는 부분은 잎사귀인데, 추운 겨울에는 잎이 없으니까요. 사시나무는 따뜻한 봄이면 새 잎을 내고, 가을이면 낙엽을 떨구는 낙엽수거든요. 또, 사시나무류는 따뜻한 열대 지역이 아니라, 겨울이 추운 우리나라와 러시아, 일본, 중국 등지에 자생하거나 심어 가꾸므로 추위에 견디는 힘도 충분합니다.

사시나무와 미루나무, 그리고 포플러
‘사시나무 떨듯 하다’는 말이 익숙한 데 비해 사시나무는 낯설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미루나무나 포플러는 어떤가요? 들어본 적 있나요? 미루나무와 포플러라 불리던 식물은 양버들, 미루나무, 이태리포플러입니다. 양버들은 일제강점기 신작로변에 심던 대표적인 나무이고, 미루나무와 이태리포플러도 길가나 마을 주변에 식재하던 수목입니다. 이들은 사시나무속의 식물이기도 하죠.
이들은 별다른 관리 없이도 잘 자라는 데다 생육 속도가 빠르고 푸른 잎사귀가 시원스러워 자주 심었습니다. 30미터 정도로 높이 자라기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요즘은 그 멋진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어요. 사시나무류는 늦은 봄이면 흰 털뭉치처럼 생긴 씨앗을 바람에 흩뿌립니다. 이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로 오인하거나, 먼지를 잔뜩 묻힌 채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며 쌓이는 모습이 미관상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해요. 또, 이들은 수명이 짧은 편이라 70년 정도면 노화가 시작되고 길어야 20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거나 상태가 나빠진 나무를 베고는 다시 심지 않았고요.
“사시나무 떨듯 하다”는 친구의 말에 지난여름을 떠올립니다. 저의 작업실은 북한산 자락에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고 산의 나무들을 살피곤 했어요. 푸른 숲 사이에는 줄기가 흰 은사시나무 몇 그루가 잎사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파락 파락. 바람 사이로 사시나무가 떨고, 풀벌레가 울고, 새들이 지저귀던 여름날이 스쳐갑니다.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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