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탕에 노란 중심을 지닌 동그란 꽃. 들판과 화단, 꽃밭에서 달걀을 꼭 닮은 꽃송이를 만납니다. 삶은 달걀을 반 갈라놓은 모습 혹은 서니 사이드 업으로 익힌 달걀프라이가 떠오르는 모습에 흔히 계란꽃이라고 부르죠. 보드랍고 따뜻한 모습에 꼭 맞는, 귀여운 이름인 듯해요.
그런데 이렇게 계란꽃이라고 부르는 식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각자 조금씩 다른 점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오뉴월 들판에는 허리께 오는 높이에서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작은 계란꽃(1번)이 피고, 이보다 꽃은 크지만 키는 한두 뼘밖에 되지 않는 다른 계란꽃(2번)이 봄부터 가을까지 화단을 지킵니다. 가을 산과 들에는 무릎과 허리 사이쯤 높이에서 지름 8센티미터나 되는 큼직한 계란꽃(3번)이 향기를 풍기고요. 이중에 어떤 것이 진짜 계란꽃일까요?

계란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아쉽게도 모두 계란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말이 정확한지 찾아볼 때에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피죠. 마찬가지로 식물 이름을 찾을 때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살핍니다. 식물도 표준어처럼 식물학자들이 종마다 정해 놓은 이름이 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은 그 이름을 모아둔 일종의 표준어 사전이거든요.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살피면, 계란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습니다. 어떤 식물이건, 계란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식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셈이지요. 앞서 살핀 세 계란꽃을 찾아보면, 조금은 낯선 이름으로 등록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번 계란꽃은 개망초입니다. 구한말, 나라가 일본에 넘어갈 즈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급격히 번성한 식물로 망초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력이 쇠하고 있는 상황에 낯선 식물이 등장했기에 ‘망할 망’ 자를 붙여 이름 지었지요. 개망초는 망초와 같은 속에 드는 만큼 생김새가 비슷한 데다 동시대에 들어와 퍼져나갔기에, 망초 앞에 ‘개’ 자를 더해 개망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두 번째 계란꽃은 마가렛트입니다. 마가렛트라 불리는 식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림 속 식물은 그중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에요. 마가렛트라는 이름은 영문명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같은 이름의 부드럽고 폭신한 과자가 생각나 재미있지요. 마가렛트 품종 중에는 빨간색, 노란색, 핑크색 꽃을 피우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마가렛트는 계란꽃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죠.
마지막 계란꽃은 구절초입니다. 음력 9월 9일 즈음 꽃을 피우는데, 이때 채취해 약으로 썼기 때문에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채취할 때쯤 되면 줄기의 마디가 9개라 구절초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하지만 구절초는 대나무처럼 마디가 뚜렷하게 발달하는 식물이 아닌 데다, 잎과 잎 사이를 한 마디로 본다고 해도 꽃이 필 즈음에는 9개보다 훨씬 많은 마디를 지닙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그 밖에도 많은 식물이 계란꽃이라 불리곤 합니다. 앞서 살핀 식물 세 가지는 모두 국화과에 드는데요. 마찬가지로 흰 바탕에 가운데가 노란 꽃을 피우고 생김새도 비슷한 국화과 식물이 많습니다. 간혹 정원과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샤스타데이지나, 우리가 차로 마시곤 하는 캐모마일 종류처럼요.
이들 계란꽃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꽃만 보면 구별이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밖에는 전부 다르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글 앞머리에서 살폈듯, 자라는 장소, 꽃의 크기와 개화시기 그리고 식물체의 키 모두 다릅니다. 꽃의 향과 잎사귀 형태도 제각각이고요. 눈길을 끄는 꽃뿐 아니라 잎과 줄기까지 관심을 가져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조현진
식물과 풍경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경학을 전공했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고, <환경과 조경>에 ‘풍경 감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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