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토엔 민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언니식물은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정원21. 11. 02 · 읽음 680

저는 아주 게으른 작물 탐험꾼입니다. 열심히 꼼꼼하게 농사를 짓지 못해요. 그래서 늘 남의 밭에 눈독을 들이기에 남의 밭에서 무엇이 자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남의 밭에서 매번 이것저것 취해 먹는 것은 아니고요. 저는 그저 작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눈으로 코로 실컷 즐기기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입은 가만히 두고요.

내비게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탐험가와는 조금 다른데요. 탐험을 하면서 자연이 주는 신호를 알아채고 해독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러려면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겠지요.

이를 테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나무가 뿌리의 방향을 결정한다든지, 넓게 펼쳐진 들판에서도 햇빛의 양에 따라 피는 꽃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요리할 때 쓰는 허브류가 많다면 그곳이 남쪽입니다. 로즈메리나 민트, 타임 같은 허브류는 많은 양의 햇빛을 필요로 하니까요. 어느 들판에 네잎클로버가 유난히 많다면 누군가 일부러 제초제를 뿌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초제 때문에 변이 현상이 생긴 것이지요. 클로버가 많은 곳은 사람이 많이 다닌다는 뜻인데, 제가 자주 다니는 산책로에서도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가기 쉽게 해놓아 마치 입구처럼 보이는 곳들에는 어김없이 클로버가 나 있습니다.

하여간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자연의 어떤 곳에서 무엇을 유용하게 얻을 수 있는지 등을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 마을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산책을 하며 이웃들의 집 앞에 놓인 화분이나 잡초 등을 통해 작은 소통의 단서를 찾아내고는 하지요.

담장 아래 아무 풀도 나지 않으면, 그 집 주인은 성격이 아주 깔끔한 사람이거나 단정하거나 아니면 결벽증일 수도 있고요. 마을 회관 앞에 가면 화분이 몇 개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지나가다가 웃음이 풋 하고 터진 거예요. 고수 좋아하시나요? 고수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식물이지요. 그런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기르실 거라고 추정되는 몇몇 상추 화분, 고추 화분 끝에 고수 화분이 있는 거예요. 참 입맛이 스타일리시한 할머니가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요. 물론 고수가 급할 때는 우리 집에서 5미터밖에 안 떨어진 그곳에서 슬쩍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비밀입니다.

물론 먹을 수 있는 식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 앞에 무심코 놓여 있는 화분에서도 그 집 주인의 성향을 유추해볼 수 있지요. 제 이웃 친구인 H의 집 앞에는 꽃이 만발이고, 우리 집 앞에는 토분에 이국적인 식물들이 담겨 있습니다. 주로 초록으로만 이루어진 못 먹는 식물입니다. 그걸 보면 저 사람은 텃밭에서 따로 농사를 짓거나, 마트에서 포장 유통된 식물을 주로 사 먹거나, 식물은 안 먹는 사람이거나 등등 여러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겠지요. 또 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겠구나 하고 추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관심과 상상을 통해서 우리가 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 주변 풍경을 보고서 그들을 이해해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틀릴 경우도 많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 온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8년쯤 전의 일인 것 같아요. 친한 이웃에게 잘 말린 바질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제 딴에는 귀한 선물이라며 준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터질 지경입니다.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녀의 집 앞에는 화분이 몇 개나 놓여있었는데, 그 가운데 허브류가 꽤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녀가 허브를 잘 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완전히 잘못된 추론이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말린 바질을 받아들고서는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말이에요. 나중에 고백했지만, 그녀는 말린 바질이 자기 집 화분에 있는 그 바질의 마른 형태라는 것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간장과 달걀을 넣고 쓱쓱 비빈 밥이나 우유에 말은 시리얼 정도가 익숙한 아이에게 생강 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편강을 내민 격이라고 비유해야 할까요?

민트에는 페퍼민트, 스피어민트, 애플 민트 등 여러 종류가 있다. © Bonnie Kittle on Unsplash

문득 그날이 떠오른 것은,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멀리 지내고 있는 친한 J 언니가 오랜만에 집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냥 온 것이 아니고 품에 민트 한아름을 안고 왔습니다. J 언니는 이 동네에서 4년여를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 저를 만나기 전에는 식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키운 바질로 직접 담근 바질 페스토, 직접 키운 민트로 역시 직접 만든 모히토 등을 가장 먼저 맛본 사람이었지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절친 이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J 언니는 허브와 하루하루 친해졌고, 우리 집 입맛과 닮아갔으며, 삶의 방식까지도 공유하는 부분이 늘어났습니다.

초인종이 울렸고, 반갑게 달려가 문을 열자 문 앞에는 비닐봉지를 든 언니가 서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언니의 얼굴을 가린 민트 다발이 인사를 건넸습니다,라고 쓰고 싶었으나,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비닐봉지 안에는 민트가 한가득하였지요. “모히토 만들 민트.” J 언니와 저는 그렇게 닮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낯설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에게 그것은 설렘이고 두근거림입니다. 낯선 누군가가 낯선 식물을 한아름 들고서는 제게 “혹시 이거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세상에서 별것, 정말 별 같은 것을 본 것마냥 좋아서 펄펄 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식물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그 식물로 무엇을 해 먹는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 곁에 있는 배경화면 위에서의 일일 것입니다.

페퍼민트는 아주 강한 식물입니다. 딜 같은 허브는 옮겨심기조차 힘들지만, 민트류는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나도록 휙 던져 놓아도 어느새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자기가 살 곳을 찾을 정도입니다. (물론 너무 메마른 땅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어요.) 또 민트는 여러해살이풀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다음 해에 또 나올 것을 기대하고, 그 자리를 파헤쳐 다른 작물을 심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새롭게 농사를 짓겠다고 땅을 다 갈아엎는 분들을 위한 주의사항입니다.

텃밭에서 막 뜯어 향을 잔뜩 머금고 있는 페퍼민트로 모히토를 만들어 대접하면, 여름날 초대한 이에게도 초대받은 이에게도 멋진 추억이 됩니다. 모히토를 만들 때는 다른 종류의 민트보다 페퍼민트를 사용하는 것이 맛이 좋아요. 페퍼민트를 절구에 적당량 찧습니다. 얼음 컵에 토닉워터를 부은 뒤 찧은 민트를 담고 럼을 조금 부어요. 알코올 취향에 따라 럼의 양을 조절합니다. 술에 익숙한 사람에게 대접할 거라면 진을 첨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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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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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들려오는 낱말들을 모으며 느리게 삽니다. 지은 책으로 <실용낭만 취미살이> <작고 소중한 나의 텃밭> <떡볶이 공부책> <짜장면 공부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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