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에서 금천교 다리를 건너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산책코스를 거의 매일 산책한다.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던 며칠 전, 오후 1시 넘어서 산책에 나섰다. 산책 후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
책 내용에 빠져 있다가 십여 분이 지나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가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핑크색 가방을 자신의 옆 의자에 올려놓고, 테이블에는 사발 면이 올려 있었다.
오후 2시쯤이었으니까 늦은 점심을 혼자 먹으려고 놀이터 앞 편의점에서 사발 면을 사서 테이블에서 먹으려고 온 것 같았다.
밤늦게 학원가 근처 편의점에는 중고등학생들로 붐비는데, 환한 대낮에 혼자 사발 면을 먹는 여자아이는 처음 봤다.
사발 면이 익으려면 3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활짝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누가 옆에 왔는지도 모르고 오디오북에 빠져 있었다. 내가 일어나 집으로 가려고 할 때, 사발 면이 다 익었는지, 뚜껑을 뜯어 먹으려고 했다.
잠깐 동안의 마주침이었지만, 나는 마치 새로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동네에 친구가 없던 나는 초등학생 친구가 생긴다면 덜 외로울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키도 제법 큰, 건강해 보이는 아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 아이의 순수함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세상과 어른들은 세파에 찌들어 가는데, 나는 간만에 순수한 아이의 세계를 경험한 듯 했다. 때 묻지 않고 구김살 없이 건강해 보이는 그녀가 앞으로도 순수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날의 산책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작은 마주침이었지만, 그 순간은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아이의 순수한 웃음이 내 일상에 작은 빛을 비추어 주었다.
꽃과산책
에세이, 동화책, 소설쓰는 짙은감성작가! 저서로 <그림동화 위니와 달비의 마법일기>,< 풍경이 있는 모든 순간> 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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