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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꽃사슴24. 05. 28 · 읽음 87

여기저기 장미가 만발한 계절이다. 내가 10살이 되기 전 지방 도시 단독 주택에 살 때 이 즈음에는 앞 마당에 장미꽃이 많이 피었다. 붉고 싱그러운 장미가 마당 한쪽에 피어 올랐다. 돌아가신 엄마가 가꾼 장미였다.

 

아버지와 연애하고 결혼할 무렵인 20대 시절, 엄마는 장미꽃처럼 어여뻤다. 

 

나는 아버지가 엄마랑 결혼한 가장 큰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비교적 큰 키에 좋은 몸매였고 하얀 얼굴과 큰 눈을 가졌다. 

 

그러나 엄마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의 친어머니, 즉 혈연인 친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내가 아는 외할머니는 소위 계모였다. 엄마의 친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가 다시 결혼해서 들인 아내이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 오셨다.

 

엄마에게는 2명의 친 자매가 더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집안에 들어 오신 후 세 딸은 차별을 많이 당한 것 같다. 우리 세대가 할머니에 대해 많이 들은 그런 흔한 스토리이다. 당시 많이 그렇기는 했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모두 대학에 가지 못했고 알아서 연애 결혼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거의 모른 채 했다.

 

엄마와 아버지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시 아버지가 당시 잘 나가는 신문사 기자였고 엄마가 아버지와 연애를 시작하자 다들 부러워하셨다고 한다. 엄마와 아버지가 연애할 때 사진이 아직도 있는데 좋은 분위기가 잘 보인다.

 

( 서울 경복궁 앞에서 찍은 사진. 지금은 허물어진 일본 총독부 건물이 뒤로 보인다)

 

엄마는 도시 여자같은 외모와 달리 순하고 착한 성품이었다. 그러나 결혼 초반 편하게 살아서 그랬는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아버지가 실직을 한 후 너무 불행해하셨다. 아버지는 집 밖에 잘 나가시지 않았고 엄마는 아버지가 돈을 안 번다고 어린 딸들 앞에서 하소연하셨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엄마는 그냥 손 놓고 있지는 않으셨다. 집을 팔고 가게를 사 동네 마트를 시작하셨다. 아마 많이 창피하셨을 거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티비가 있고 명절 때마다 선물이 들어오고 자가용이 오는 집에서 순식간에 꼬마들을 상대하는 동네 마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 거다.

 

엄마는 장사를 잘 하진 못했다. 억척스러운 여자는 아니였다. 동네 가게를 하며 우리는 풍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소홀하게 하진 않으셨다. 엄마는 원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엄마가 아버지 원망을 많이 하는 게 싫었다. 혼자 열심히 힘을 내 볼 수도 있는데 아버지에게만 모든 걸 거는 인생이 싫었다. 남자에게 인생을 의지하는 연약한 여자의 인생 말이다. 나는 절대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 후 엄마는 나에게 기대를 많이 거셨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 취업에 거듭 실패하자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나에게 많이 실망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미국 어학 연수를 하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찬성하며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셨다. 당시 엄마는 이미 아프기 시작했고 집안은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웠다. 아프신 엄마의 설득에 아버지가 방도를 마련했다.

 

결국 미국 어학 연수 중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미 내가 대학 고학년 때 암으로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게 급속도로 나빠지셨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어학 연수를 그만두고 장례식에 겨우 도착했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의 무능력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고 돌아가셨다고 원망했다.

 

대학 졸업 때 취업을 못해도 엄마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암으로 아픈 중에도 미국으로 보내 주셨다. '여자도 공부를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엄마가 진짜 실천하게 만드신 거다. 물론 지금 내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남편이 없어도 얼마든 혼자 살 자신이 있다. 조금 더 힘들기는 하겟지만 못 할 건 없다. 그건 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항상 내 곁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신 것 같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든 없든 마음 속에 살아 있다. 할짝 핀 장미를 보니 그 속에도 계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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