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토실 아기 엉덩이 같은 적환무를 바랐건만 쭉정이도 이런 쭉정이가 없었습니다. 뽑아낸 상황에서 쭉정이를 바라보고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다시 심었습니다. 빵실 빵실하게 영글 수 있을까 하는 크나큰 바람을 안고 다시 심었습니다.
다음 날 물을 주러 가 보니 잎들이 축 처져서 바닥에 널 부러져 있었습니다. 아~ 님은 갔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냥 자동으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또 모르니 저렇게 두다 다 말라비틀어져 죽으면 그때 정리하든가 하자 했습니다.
그런데 웬 걸 바로 다음 날 나가 보니 벌레들에게 물어뜯긴 모습은 그대로지만 쉬는 날 저를 보는 것처럼 바닥에 널 부러져 있던 잎들이 나름 힘 있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습니다. 오~ 생명은 초록은 역시!!! 이후 아직까지 잘 자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씩씩하게 하늘을 향해 잎을 뻗어내 보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적환무를 최초에 뽑고 다시 심을 때 싹이 나려면 나 봐라 하고 심은 수박씨는 생각보다 싹이 잘 나왔습니다. 잡초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눈만 돌리면 또 새로운 잡초가 나는 곳이라 애써 올라온 수박 싹을 뽑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길 몇 날 며칠이 지났는데 여느 잡초들과는 다른 동글동글한 싹 몇 개가 줄을 맞춰 그러니까 씨를 심은 자리대로 올라왔습니다.
기특한 수박, 초록입니다. 이후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처음의 떡잎 이외에도 다른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웃긴 건 수박이 한창 나오는 시기에 나온 수박을 신나게 먹고 씨를 발라 모아 심은 녀석들이라는 점입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수박이 열리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게 또 싹이 자라고 추가적인 잎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혹하게 됩니다.
뭐 올해 아니면 내년 여름에 뭐가 열리든 아니든 하겠지요. 찾아보니 한해살이풀이라는데 올해가 아니어도 내년에 열릴 수 있다면 열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지난 글에도 이야기했지만 수박이 열리는 건 부수적인 거고 그저 씨앗을 심어 싹이 나오고 자라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마음은 초록으로 가득합니다.
초록은 귀차니즘에 매몰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이며 이상한 꿈을 꾸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ㅎ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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