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화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자그마한 손엔 , 마치 보물을 다뤄 안듯 무언가 들려있었다. 강낭콩 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강낭콩을 심어 기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엄마, 내 강낭콩이 키가 커졌어. "
"엄마, 내 강낭콩에 꽃이 피었어."
"오늘은 학교에 못 가는데 강낭콩에 물은 누가 줄까?" 이런 식의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들려주었으니까 ,
한데 그간 이야기하던 콩이 맞긴 한 건가, 실은 조금 의문스럽긴 했다.
화분을 가까이 들이밀며 야단을 떠는 아이를 마주했을 때, 나는 마치 고장 난 태엽장난감이라도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노란 화분엔 주욱 기다랗고 볼품없어 보이는 줄기 하나만이 여름날 맥없이 늘어져버린 어느 엿가락처럼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내 강낭콩 좀 봐. 선생님께서 이젠 집에 가져가 기르라고 하셨어. 어때 많이 컸지? 여기 좀 봐. 꼬투리도 맺혔고, 잘 안보 이긴 하지만 꽃도 있어. 또 꼬투리는 두 개나 된다."
내게 말할 기회 같은건 영원히 주지 않을 것처럼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 .강낭콩보다도 연둣빛이 나던 모습. 싱그러웠다.
그때 나는 내 아이가 이렇게 말이 빨랐던가. 눈앞의 강낭콩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속으로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쓰러진 건지 늘어진 건지 나른한듯 휘어져있는 강낭콩 줄기를 잠시 들여다보니 ,
몬스테라에 쓰고 있는 식물 지지대가 스치고 지나갔다. 가느다란 콩 줄기가 꺾여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몬스테라 옆에 가만히 옮겨두었다. 그리곤 조악한 지지대 하나를 쑤욱 뽑아 들었다. 시원스레 뻥 뚫린 몬스테라 잎사귀만큼이나 상쾌한 흙냄새가 났다.
지지대는 다행히 아이의 작은 콩 화분에도 어울렸다. 어쩐지 새로운 줄기가 하나 더 든든하게 생긴 듯했다. 가느다란 철사 만큼 약했던 줄기가 마침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우와 , 엄마 정말 고마워." 아이의 얼굴이 더욱 산뜻해 보였다.
눈에 보일 듯 말듯한 정도의 꽃망울, 꼬투리, 제법의 잎사귀까지. 여전히 가냘픈 듯 서 있지만 당당한 힘이 느껴지까지 했다.
강낭콩에 물을 주고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아이.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내가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화분 이라지만, 내 아이에겐 최초의 정원이라 할 수 있으리라.
꽃, 잎사귀, 열매, 모자라지 않은 흙내음까지. 부족할 것이 없다.
앞서 내가 보잘것없이 보인다라고 했지만,
과연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는 가느다란 줄기와 잎사귀와 꼬투리를 바라보며 여느 때보다 눈을 빛내고 있다.
식물에게 다정한 눈빛을 건네며 ,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까.
이러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훗날 내 아이의 삶이 더욱 단단해지고 풍성 해질 수 있다면 바랄 것 없겠다.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하게 뿌리 내려 자라고 있는 초록의 줄기를 바라보며 . 살아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단 것을 알게 되고 , 나날이 다른 꿈을 꾸면서 자라난다면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을 테니까.
김영혜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형님몬스테라와 아기몬스테라, 하트아이비, 스투키,이오난사를 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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