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일기
이야기하는늑대24. 07. 13 · 읽음 160

 이쯤 되면 병이다. 아니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감기 같은 건가? 나 같은 아마추어 작가는 아니 정확히 나는 불분명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주기적으로 옅어지기 때문에 한 번씩 확인을 해 줘야 한다.

 

 

 글을 왜 쓰는가? 여기저기에 그리고 이전에 글을 왜 언제부터 써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써 나갈 건지 참 많이도 떠들어 놨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기에 아마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일 테니 다시 해 보려 한다는 됐고 귀찮으니 굳이 찾아볼 의향이 있는 분들은 검색 창에 ‘이야기하는 늑대’를 검색해 찾아보기를 권고드리는 바다. 그런데 뭐 별 기대는 없다. 딱히 찾을 만한 분들도 안 계실 것 같고 찾아지긴 할라나 모르겠다.

 

 

 제목인 ‘적극적인 일기’는 내가 내린 나의 글쓰기에 대한 결론이다. 딱 저 마음으로 쓰고 있다. 더 들어가서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면 ‘살아 온, 살고 있는 그리고 살아 갈 이야기’를 쓰는 게 목적이고 목표다. 능력이 되거나 운이 좋아 그런 파편 같은 글들이 엮여 책이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책을 출간한다 한들 딱히 팔릴 거 같지도 않아 그냥저냥 어물정거리고 있다. 물론 책이 팔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출간하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긍정적인 경험이 될 거라는 여러 지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이해를 못 하는 바도 아니나, 아... 귀찮어...)

 

 

 적극적인 일기를 쓴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삶에 대한 어마무시한 성찰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 나아가 일상이 스펙터클 하지도 않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선 일기라는 형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일기를 쓰는 건데 ‘적극적인’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인 이유는 조금 있어 보일까 싶어 붙였을 뿐이다. 있어 보이긴 하나?

 

 

 글쓰기의 슬럼프(글태기, 글럼프 등등)인 듯 아닌 듯한 시기다. 글을 같이 쓰는 분들과 함께 오래 하면서 일주일에 최소한 두 편 정도의 적당한 길이의 글을 쓰는 습관이 잡혀 쓰고 있기는 한데 정확히 그 습관에 밀려 그냥 꾸역꾸역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지속적으로 쓰는 게 일부 글쓰기 강의를 하는 분들이 강조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 아마추어 작가지만 여하튼 뒤에 따라오는 후배 아마추어 작가분들에게 같잖은 조언 아닌 조언으로 얼마 전까지 아니 사실 지금도 뭐 잘 모르면 지속적으로 힘들어도 꾸역꾸역 쓰세요라고 하긴 하는데 그냥 관성적으로 떠드는 거 같다.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이라는 영역이 있는 건데 재능이 일천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한다고 해도 나름 그 한계는 분명해 오히려 희망고문일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뭐 할 수 있는 게 노력하는 거밖에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고 그렇게라도 하라고 이야기해 줄 수밖에 없는...(여러분, 노력할 수 있는 거 그거, 그것도 재능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브런치를 본거지 삼아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최근엔 그로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로로에선 글 잘 써 준다고 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출간했다면 한 달에 적게는 100권, 많게는 200권 정도를 팔았을 때의 인세에 해당하는 응원금(원고료)을 받고 있다. 그래서 더 책을 출간할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로로를 끊어야 책을 출간할 수 있으려나? 너무 달콤해... 중독이다.

 

 

 참고로 그로로는 식물과 일상 이야기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그렇다. 그로로에선 글을 쓰는 작가를 넘어 ‘식집사’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내 평생 식물을 키우고 식집사로 불릴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세상 돌아가는 게 그렇다. 이 전엔 브런치를 본거지 삼아 글을 올렸기에 다양한 일상을 주제로 쓴 글을 주로 올렸는데 요즘은 그로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키우고 있는 식물과 일상 이야기로 거의 정확하게 양분되고 있다.

 

 

 최근에 일상 이야기와 관련해 그로로 답게 ‘초록이 주는 힘’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올리라는 데 웃기지도 않게 식물을 키우고 있으면서도 초록이 주는 힘이 딱히 뭔지 몰라 이렇게 대충 아무 글에나 ‘초록’이라는 단어를 욱여넣고 있는 중이다. 그로로 에디터들이 봐 줄라나 모르겠다. 봐주면 좋은데... 아마 안 봐줄 거야, 봐도 그냥 무시하겠지?

 

 

 요즘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중요한 건 심드렁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꾸역꾸역 쓰고 있는 것도 맞고, 일기를 쓰고 있는 것도 맞고, 나름 식물과 관련한 주제를 잡아 쓰고 있는 것도 맞는 그러니까 여하튼 글을(글만) 쓰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 보고 싶은 열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언제든 레버를 돌리면 뜨겁고 파란 불이 켜지는 가스레인지 같다고 해야 될까? 지금은 가스레인지가 꺼져서 잔열만 남아 있는 상태 정도로 보면 정확할 거 같다. 하지만 언제고 레버를 돌리면...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겠지, 출간은 얼어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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