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한 적은 많았지만 대부분 지루했고 하고 난 후에는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나의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의 폐부를 찌르는 문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었지만 몇페이지 읽다 포기했던 책인데 SNS 친구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하기에 다시한번 읽게 되었다.
그는 소개팅을 하며 느꼈던 일들을 인생의 한 단면으로 승격시켜 철학 담론으로 만들어버린다. 작가의 역량이겠지. 이런 지지부진하고도 뻔한 상황 속에서도 누구는 ‘지루하다’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누군가는 인류애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으로 펼쳐 보여줄 수도 있다는 점이.
아무튼 한순간에 작가에게 반한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상대는 직장에서의 견고한 입지와 좋은 때 매입한 부동산을 교양 있는 방식으로 자랑했다. 그녀는 남자의 갈라진 입술을 봤고 엊그제 로드숍에서 구입한 사천오백원짜리 립밤을 떠올렸다. 하지만 보답 받지 못하는 마음을 세상에 얼마나 더 줘야 할까. 이것은 투자와 수익의 문제일까. 43p
소개팅이라는 소재에서 인류애를 엮어버리는 작가의 필력에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채찍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넌 왜 이런 발상을 못하는 거니.” 라고.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던 조맹희에게 친구 리아는 일침을 가한다.
왜 사랑을 성애에서만 구하려고 하니. 우리는 신을 사랑할 수도, 계절을 사랑할 수도 있지. 조카의 해맑은 웃음에서, 동네 빵집에 진열된 갓 구운 빵에서, 뜻밖에 가뿐하게 눈뜬 아침 이불 속에서 듣는 새들의 지저귐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야. 그게 성숙이라고. 50p
사랑에 목말라 괴로워하고 사랑했을 때의 감정을 잊지 못해 길거리에서 주운 호랑이 인형처럼 포효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이야기였으리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말에 뜨끔했다.
너무 집착하면 얻을 것도 못 얻게 되리라.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싶다. 주변을 살펴 한껏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기를... 다짐해본다.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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