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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 가위손
김영혜24. 08. 01 · 읽음 311

 

내가 맨 처음 걸음을 떼던 날,  처음 밥을 먹었던 날,  처음 말을 했던 날. 이런 것들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도무지 기억 나질 않는다.
음,  처음이란 단어에 사람들은 대개 어떤 감정들을 떠올리려나,


보통 나에게 처음이란. 설렘, 두려움, 희망, 염려, 환희, 조바심 같은 상반되는 마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양새로 교차하곤 한다.

 

여러 모습의 처음중에서도 유난히 뭉근한 마음 으로  기억나는 일이 있다.
처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던 날.
세 살 터울이 나는 사촌오빠와 함께였다.

 

 

그때 내 나이를 아홉 살이라고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 어째서 또렷이 기억나느냐 반문한다면 실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그저 아홉 살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봤었지 , 라고 그날 그 시간 이후 내내 새기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억엔  줄곧 그때가 아홉 살 하고도  겨울이었다.   해가 이미 져버린 저녁시간이기도 했거니와. 어쩐지 조금 스산한 느낌에 그저  겨울로 내내 기억했던 듯 싶다. 그건 아마  처음 마주하는 낯섦에 느꼈을  아홉 살 나의 고유한 감정.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했던  설렘, 두려움, 조바심 이런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 영화 개봉일은 1991.06.29 ).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사촌 오빠가 1층 롯데리아 매장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던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내 기억에 남아있고 , 나는 패스트푸드 매장조차 처음 가보았던 터라. 잔뜩 긴장한 채 감자튀김만 먹겠노라 간신히 오빠에게 이야기하고는 ,  차마 먹지는 못한 채 손에 땀이 차도록 쥐고만 있던 모습이 흐리게 떠오른다. 무관심한 얼굴로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어 삼키던 , 오빠의 얼굴이 어쩐지 얄미워 보이기까지 했던  기억도 함께.

 

매표를 어떤 식으로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떠오르는것이 없으나, 극장에 앉아서부터 영화가 시작된 후 두어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깜깜해진 너른 극장 안이 낯설었던 터.  사촌 오빠에게 무섭다고 이야기 했더니 , 조용히 하라던 오빠의 대답. 미처 읽기도 전에 빨리 지나가버리던 긴 문장의 자막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 물었더니, 조용히 하라며 또 한 번 무심하게 답하던 오빠의  모습.

 


나는 어찌나 무안했던지 , 마치 무언가에  꼬집히기라도 한 듯 따끔한 마음이 들어 그제야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터였다.

 

그때까지 내가 주로 보았던 영화라면,  여러 아이들과  비디오테이프로 몇 번이고 돌려보았던 강시이야기라던가, 영구와 땡칠이, 후레쉬맨, 바이오맨 같은 종류였다. 함께 보던 동네 아이들은  자주 깔깔거렸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그런 종류의 영화에서 분장이나 장면들이 뜬금없이 무섭기도 했고 , 곧잘 따분하기도 했다.

 

한데 , 극장에서 처음 보고 있는 영화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색상의 배경들과 인형들이 입을법한  사랑스러운 의상 하며 ,  웅장한 울림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음악까지. 조바심 내던 아홉 살 여자어린이 마음을 온전히 빼앗기엔 이미 충분했다.

 


당연히 커다란 스크린에서 다소 긴 문장의 자막이 나올 때면 , 무슨 뜻인지 이해할 사이 라곤 없이 그저  읽어내기에  바쁘긴 했지만.

 

창백한 얼굴에 크고 날카로운 가위의 손을 달고 있는 남자 주인공. 인형같이 화려하고 예쁜 여자 주인공. 팀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이었다. 아이의 마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엔 물론  어려웠을 영화였을 테다.

 

 

다만 ,  두 주인공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을 거라는 것과. 마을사람들이 조금 무서우리만치 산만하게 느껴졌고 , 사납게  생각되었던 것. 가위손을 달고 있는 남자는 무척 상냥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가 미용을 해준 마을의 강아지는 가위손의 남자를 잘 따르고 위로해주고 있다는 점. 역시 강아지들은 사람을 마음으로 잘 알아보는구나. 예쁜 장면들이 많지만 ,  조금 슬픈 것 같아.
가위손의 남자는 외롭겠다. 얼굴의 상처만큼이나 아프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가위손의 남자가 마을 부인들 머리카락을 현란하게  잘라주고 , 이웃 강아지들 털이나 정원의 나무들을 근사하게  매만져  주던 장면들은 무척이나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 극장에 갔던 아홉 살 어느 날.  하필 보았던 영화가 가위손의 창백한 얼굴에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판타지장르라면 유난히 반가워하는 터. 게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을 한글자라도 놓치기 싫었던 마음에 ,  작았던 아이는 악착같이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극성맞고 고약해 보이기만 했던 사람들과 달리 , 주인공의 선한 마음을 알아주던 강아지.  감각적이고 근사한 배경까지. 두려움과 조바심으로 가득하기만 했던 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은  조금 슬프지만 ,  동화같은 이야기에  어느새 설렘과 눈부신 아름다움 같은 것들로 온통 물들었다.

 

금방이라도 녹아 버릴듯한 이 여름.  한여름밤을 벗 삼아 , 가위손의  남자이야기를 다시금 보려한다.  어느덧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의 내가 영화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일는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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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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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형님몬스테라와 아기몬스테라, 하트아이비, 스투키,이오난사를 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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