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던 뜨거운 여름도 이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조금씩 물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엔 우리 주변의 나무들도 너무 힘들어 보였는데요, 오직 이 나무만이 기다렸다는 듯 꽃을 피우며 여름을 만끽하고 있더라고요.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롱나무입니다.
피고지고 100일 백일홍
배롱나무는 사실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요, 초화류 중에서 백일홍이 따로 있기에 혼동이 생겨서 그런지 목백일홍으로 구분해 부르거나 배롱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의 꽃이 지면 다른 꽃이 연달어 피어 100일동안 피기 때문에 백일홍이라고 한대요.
아주 오래전부터 백일홍으로 불렸기 때문에, 누군가 배롱나무를 백일홍이라고 한다면 결코 틀린 이름이 아닙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도 늘 제게 저 나무는 백일동안 꽃핀다고 백일홍이다... 알려주시곤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제겐 배롱나무라는 이름보다는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친숙합니다.
그럼 배롱이라는 이름은 뭘까... 궁금하실텐데요, 백일홍 백일홍 하고 부르다 배롱으로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더라고요. 충분한 설명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름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
일본에서는 배롱나무를 사루스베리라고 한다는데요, 수피(나무 껍질)이 미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이라네요. (사루=원숭이, 스베루=미끄러지다) 실제로 수피가 살짝살짝 벗겨지며 미끈미끈한 것이 겨울엔 꼭 모과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답니다.
불길한 나무? 귀신쫓는 나무!
남부지방에서는 서원, 향교, 절 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조경에도 흔히 사용되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유독 제주 지방에서만큼은 불길한 나무로 여겨 집안에는 되도록 심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 줄기가 마치 살이 벗겨진 앙상한 뼈같고, 빨간 꽃은 마치 피처럼 보여 불길하게 여긴다고 하네요.
하지만 남부지방에서는 귀신을 쫓는 나무라고 무덤 주변에도 흔히 심고 있어요. 귀신을 쫓아준다니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반영된 나무라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간지럼을 타는 나무라니!
배롱나무의 줄기를 간지럽히면 간지럽다는 듯 가지를 흔들기도 한다는데, 그래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답니다.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간지럽혀 보지만, 제게는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배롱나무를 보시면 간지럼을 타는지 꼭 한 번 확인해보세요.
하얀 꽃 배롱나무도 있어요!
전 배롱나무가 분홍색 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요, 얼마전 집 앞 공원에서 하얀색 꽃을 가진 배롱나무를 발견했어요.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라고 하는데요, 이 흰배롱나무의 꽃말은 조금 달라서 '수다스러움'이나 '꿈' '행복' 등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무가 꽃을 다 피우고 쉬는 7~9월에나 꽃을 피워 게으름뱅이 나무라고 한다는 배롱나무... 하지만 한여름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배롱나무 덕분에 뜨거운 여름도 여름다웠고 행복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이 나무를 이제 저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온유한식물누나
안녕하세요? 늘 온유하게 살고 싶은 식집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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