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덥다 외치던 여름이 갈 채비를 하니

마음 한 켠에서는 아쉬움이 일렁입니다.

한여름에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겨울에는 여름을 그리워하는 이 간사한 마음을 어쩔까요.

그렇게 덥고 습한 올해 여름이었는데, 식물에 미친 저는 그 습도를 뚫고 속초에서 일산까지 건너간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맥문동' 때문이었죠.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어디선가 보셨을겁니다.

그늘에서도 무난히 잘 자라 아파트 화단의 나무 밑에 가득 심겨져 있거든요.

여름에는 보라빛 꽃을 가득 피우는데 군생으로 심어두면 마치 라벤더 밭을 방불케 하는 멋진 모습이 되지요.

맥문동 Broadleaf Liriope , 麥門冬 

학명: Liriope platyphylla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한국·일본·중국·타이완에 자생합니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며 노지 월동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흔하디 흔한 흔둥이가 약재로 쓰인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맥문동 뿌리를 약으로 쓴다. 잎은 푸르러 향부자와 비슷하며 사철 마르지 않으며 뿌리는 구슬 꿰어놓은 모양과 같다. (중략) 맥문동은 심장을 보하고 폐를 시원하게 하며 정신을 진정시키로 맥의 기운을 안정시키는 약이다." 

<동의보감 中, 탕액편 호부(上)>

더운 여름에 오미자, 맥문동, 인삼을 달여 식혀 꿀을 살짝 넣어 마시면 몸의 열기가 싹 가라 앉는 기분이 들어요.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생맥산이란 음료지요!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 심어진 맥문동은 '개맥문동'으로 덩이뿌리가 잘 발달하지 않는 종이라고 하니 혹시 밤에 몰래 캐실 생각은 금물입니다. 물론 약도 칠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일산에 간 이유는 말이죠.

이 "사피무늬 맥문동"을 직접 보고 고르기 위해서였어요.

무슨 유난이냐 하실 수 도 있지만 네 유난 맞습니다. 제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직접 보니 무늬가 어찌나 예쁜지 역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올만 했습니다.

사피무늬 맥문동은 다른 맥문동에 비해 성장이 느린 편이라고 하니 제게 땅이 생기는 그날까지 잘 돌봐주어야겠어요!

그런데 세상에! 사피무늬 말고도 또다른 맥문동이 있었는데요.

Ophiopogon planiscapus 'Nigrescens', 블랙몬도그라스 라고도 해요.

이 "흑룡"이라는 종의 검은 잎이 너무나 우아한 거예요. 보자마자 바구니에 넣었답니다.

내년 여름에 이 친구가 피울 꽃이 너무 기대가 돼요.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친구는 소엽 맥문동 중의 하나인 은룡이에요.

가느다란 잎새와 연한 색이 마치 동양난을 보는 것 같지요.

정원의 그늘진 곳이 은빛으로 가득할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즐겁습니다. 

세 친구를 또르르 모아놓으니 밥 안먹어도 배부르네요.

제 식물 취향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에요. 다육이, 호야, 관엽, 양치식물, 아프리카 식물, 꽃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를 키우는 중인데 예전에는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이었다면 요즘에는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언제가는 꼭 땅을, 정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실내 식물보다 노지 식물에 관심이 더 생겨요.

지금부터 실내에서 잘 키워놓았다가 땅이 생기면 옮겨 심어보렵니다.

다음편에서는 (너무 일찍) 미리 사둔 나무들을 소개해드릴게요! ㅎㅎㅎ

그런데....

땅 살 돈은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