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을이 오면 좋겠다!
꽃사슴24. 09. 14 · 읽음 38

대형 물류 센터 알바를 시작한 건 7월이었다. 내가 하던 일은 몇년째 성과가 미미했고 그 해에는 하나의 성과도 없이 실패 뿐이었다. 나는 지쳐갔고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내리자 죽을 듯이 우울해졌다. 이런 우울증에는 몸을 움직이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글을 읽었다.

 

나는 육체 노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알바를 구하는 앱에 들어가 제일 처음 보인 게 이 물류센터 광고였다. 휘황찬란하게 번쩍번쩍 여러 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휘황찬란해서 사기처럼 느껴졌지만 엉겁결에 손가락이 메뉴를 눌렀다. 

 

한번 누르기 시작하자 계속 누르게 되었다. 내 이름을 써 넣고, 나이와 성을 써 넣고,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벌써 제출까지 눌러 버린 걸 어쩌겠는가? 그냥 핸드폰을 놓아 버렸다. 그런데 30분도 안 되어 금방 연락이 왔다.

 

전화 속 목소리는 내일 당장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주소를 물어보고 가까운 셔틀버스 정류장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대형 물류 센터에 알바를 가게 되었다. 집에서 멀지 않아 셔틀 버스를 타고 가자 금방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건물은 밖에서 보면 14층으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지만 안은 온갖 물건들로 쌓인 창고로 7층을 이루고 있었다. 첫날 안전 교육을 받은 후 나는 2층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리터짜리 세탁 세재와 1리터짜리 샴푸, 분유통 8개들이 박스와 음료캔 24개 묶음, 4키로 쌀포대가 칸칸히 쌓여 있는 곳이다. 나중에 들어니 그 곳은 가장 무거운 물건들이 모인 층이었다.

 

처음 온 몇몇 알바들과 함께 카트를 챙기고 집품 박스를 싣고 pda를 이용해 물건을 집품하는 법을 관리자에게 배웠다. 처음 간 칸막이는 다행히 과자 박스가 있는 곳이었다. 관리자에게 배운대로 나는 pda를 들고 과자 박스 바코드를 찍엇다. '삑! 실패!' 뭐야? 하고 생각하며 열번 쯤 더 찍었다. '삑! 삑! 삑! 삑!' pda가 요란하게 실패를 알렸다. 좌절스러웠다. 이렇게 쉬운 일을 못하다니.

 

할 수 없었다. 관리자를 찾아가 안 된다고 알렸다. 순간 노란 조끼를 입은 관리자의 얼굴이 험하게 변하더니 '다 가르쳐 줬는데 뭐가 안 되는대요?' 하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를 끌고 가 안 되는 걸 보여줬다. 순간 관리자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과자 박스를 돌려 다른 면을 보여 줬다. 거기엔 다른 바코드가 있었다. 

 

'찍으세요!' 관리자가 차갑게 말했고 내가 pda로 찍자 '삑! 성공!'하고 화면에 떴다. '바코드가 여러 개인 상품도 있단 말이에요.' 관리자가 내뱉고는 돌아 나갔다. 나는 움추러 들었다. 이런 것도 못하다니. 그렇게 첫날을 보냈다.

 

며칠 후 다시 신청을 하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둘째 날이었다. 첫날은 교육을 받느라 몰랐는데 둘째날부터는 아침부터 출고 부서 집품을 하는 대기 장소로 가서 줄을 서라는 안내를 받았다. 장소에 가자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노란 조끼를 입은 관리자가 인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대강 아무 줄에나 섰다. 8시가 되기 전 관리자가 30명쯤 잘라서 가자고 했고 나도 거기에 속해 따라 갔다.

 

줄은 6층에서 시작해서 2층까지 내려갔다. 정말 끝도 없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2층에 접어들자 줄에 선 몇몇이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관리자 앞에 서서 아침 브리핑을 듣고 일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한 후라 그런지 집품 장소도 잘 찾고 물건도 집품 박스에 잘 담을 수 있었다. 3리터 세재 4개들이 박스를 담고, 4키로 쌀포대를 박스에 담았다. 집품 박스가 차서 컨베이어 레일에 가서 올리고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3천보쯤 걸었을까? 얼굴이 빨개지며 숨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벽에 있는 개방형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첫날은 비가 와서 몰랐는데 해가 드니 금새 더워지고 있었다. 분유통 8개들이 박스 10개를 싣고 캔음료수 24개들이 묶음 40개를 카트에 무더기로 실었다. 숨이 턱 막혔다. pda를 보니 아직 아침 10시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통로에서 관리자가 뛰어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느려요?' 험한 얼굴로 나에게 소리쳤다. 마음이 움추러들었다. '죄송합니다' 하고 대답하고 다시 움직여 물건을 싣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더위는 더해지고 에어컨이 없으니 건물 자체가 데워지는 듯했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지기는 것 같았지만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여 물건을 찾아 실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다른 이들도 몽롱한 눈빛으로 터덜터덜 카트를 밀고 있었다. 좀비처럼 움직였다. 가끔 대형 선풍기가 나타났다. 그러면 우리는 선풍기 앞에 서서 바람을 쐬었다. 그러나 정식 휴식 시간이 아니었다. 관리자가 나타나면 바로 흩어졌다.

 

다행히 점심 시간이 빨리 왔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시원한 식당에서 밥을 벅고 얼음물을 마시고 나머지 시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식사 시간이 끝나자 다시 더위 속으로 들어가 카트를 끌며 허리가 휘청하게 무거운 물건들을 들어 올렸다. 좀비처럼 몽롱한 눈빛으로 6시간 동안 5만보쯤 걸으며.

 

퇴근 시건이 되자 사람들이 좀비의 눈빛에서 깨어나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2층에서  6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4개층이 아니라 8개층이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내 다리는 계단을 오르는 걸 거부했다. 그러나 핸드폰이 6층 사물함에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올라가는데 끝이 없어 보였다.

 

마침내 6층에 도착하니 천국 같았다. 핸드폰을 찾아 셔틀 버스 안에 들어가니 옆 자리에 나이 많은 언니가 앉아 있었다. 계약직이라 내일도 또 일한단다. 더워서 죽을 것 같지 않냐고 내가 물으니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진단다. 혼자 청소년인 아이 둘을 키우는데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했다. 빨리 시원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언니가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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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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