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유명한 작가들도 소설쓰는 게 막힐 때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한다.
내가 주목한 건 그렇게 막힐 때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 난관을 뚫고 유명 작가가 되었느냐이다.
1. 백지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
<놓치고 싶지 않은 이별>을 쓴 저자 앤 타일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소설을 쓸 때 백지 상태로 시작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써놓고 계속 둘 뿐이다. 아이디어를 이용할 소재가 떠오르면 그때서야 한달 동안 계획을 세우고 집필을 시작한댄다.
버지니아 울프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을 된 계기가 이 책을 쓰기 전 쓴 단편 <본드 가의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에서 소재, 간략한 줄거리를 얻어 장편 델러웨이 부인을 쓸 수 있었다.
2. 줄거리를 빠르게 생각해내는 방법
이언 맥큐언은 친구랑 하이킹을 하면서 이런 수다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은 한명이라도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나머지 한 사람이 책임지고 암스테르담에 데려가 합법적으로 안락사 시켜줄 거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이 수다를 다음 줄거리로 확장시켰다.
평소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두 인물이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서로 동시에 상대방을 암스테르담으로 끌어들여 죽이려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훗날 살을 붙여 소설 <암스테르담>이 되었다.
산책하다가 생각나는 이야기나, 친구랑 수다떨던 이야기를 수집하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순간이었다.
3. 대사를 쓰는 건 유명 작가에게도 힘든 일이다.
<인간의 굴레>를 쓴 서머셋 모음이 대사를 쓰는 기법을 숙달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수도원에서 매일 아침에 입센의 책을 몇 페이지씩 시작한 것이다.
나도 아침마다 반드시 1시간은 책을 읽는데 신작을 읽기도 하고 전날 읽은 소설 플롯을 정리하기도 하고
좋은 표현을 타이핑하기도 하는데 본능적으로 이런 방법을 알았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도 장면을 쓰고, 풍경을 묘사하고, 이미지 패턴을 구상하고, 시간의 흐름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고자 책을 읽었다. 그녀는 읽은 책을 기교를 중점으로 두어 구절을 모방했다.
나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따로 저장해놓고는 한다. 언제 읽어도 감탄만 나오는 책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들의 문체,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을 모방하고 싶었던 것 같다.
4. 중간에 막힐 때 극복방법
이언 매큐언이 <속죄>를 쓸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흥미롭다.
극 중 화자인 브리오니가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글쓰기는 평생 그녀에게 속죄의 형벌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한번에 나온 게 아니라니.
이언 매큐언은 처음에는 장면 하나만을 썼을 뿐이다.
'한 젊은 여인이 야생화를 들고 꽃병을 찾으러 화실로 들어갔다가 그녀가 보고 싶은 동시에 피하고 싶은 청년이 정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 297p
딱 600자 정도의 글을 썼을 뿐이다.
이 장면을 쓰고 다음 장면을 쓰기까지 6주일이 걸렸다.
이 난관을 돌파한 방법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을 하며 이야기 골격을 만들고 살을 붙였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이 여성은 누구인가?
청년은 또 누구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이 사건은 언제, 어디에서 벌어지는가?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다보니
가족 전체가 나타났댄다.
그는 자신이 결국 던커크와 세인트토머스 병원에 대해 쓰게 될 거라는 걸 감지했고
브리오니가 소설을 지금 쓰고 있고 그녀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거고
글쓰기는 평생 그녀가 속죄하는 행위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시절 이응준 작가님에게 소설 쓰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줄거리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혀가는 방법을 알게 된 건 이 책(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을 통해서라 더 값지다.
유명 작가도 초고를 쓸 때, 소재를 구할 때, 글이 막힐 때 얼마나 노력하는지
노력 끝에 결실 맺는 방법을 이렇게 나는 쉽게 받아 먹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겁먹지 않고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라디오 드라마 kbs 무대에도 글을 내보고 신춘문예도 나가보려 했는데
글이 자꾸 진부하게 그려져 포기했는데
산책부터 시작해야겠다.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댓글 9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