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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를 심다
Kaisa24. 10. 12 · 읽음 76

나의 식물 경험은 어릴 때 마법의 콩 키워본 것, 행운목 키워본 것 이렇게 두 번 뿐이다. 

이 두 번도 누군가에게 받아서 키우기 시작한 것이라 스스로 무언가를 심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라면서 항상 집에는 식물이 많았는데 그건 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식물을 좋아하고, 그래서 자주 화분을 선물하곤 하는데, 사서 주는 선물 말고 직접 키운 걸 선물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뜬금없이 세 번째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백묘국은 내가 보기에는 눈 쌓인 풀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집안에서도 겨울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 채송화를 골랐는데 나중에 받고 나서 물어보니 엄마는 백묘국도 예뻐보인다고 해서 조금 김이 빠졌지만 이내 신나게 택배를 뜯었다. 

택배를 받고는 너무 가벼워서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흙이랑 화분이랑 다 들어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가볍다니.

택배를 뜯어보니 흙 자루가 아니라 동그란 태블릿 같은 것이 들어있어서 찾아보니 압축상토라는 것이란다. 그렇구나. 압축했구나. 

벌써부터 내가 모르는 식물들의 (식물을 키우는 자들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을 뿌리면 불어난다고 해서 분무기로 칙칙 뿌려봤는데 누가 봐도 역부족인 것 같아 컵에 물을 붓고 담가두었더니 마법처럼 흙이 됐다!


벌써 너무 재밌어서 이래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건가 싶었다. 채송화는 비교적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물이 잘 빠져야 해서 아주 작은 돌멩이들을 섞어주었다. 섞고 나니 흙이 어딘가 귀여워져서 기분이 좋았다. 

영양제도 같이 들어있는데 이건 위에 뿌리는건지 흙과 같이 섞어버리는건지 한 번에 다 넣는건지 조금씩 넣어야할지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조금만 덜어서 위에 뿌리고 살살 섞어줬다. 뭐든지 모르겠으면 어중간하게 해본다. 

씨앗도 얼마나 깊이 심어야하나 고민하다가 정말 흙이 살짝 덮여서 안 보일 정도로만 해뒀다. 


간단해보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갑자기 길을 잃는 것이 재밌다. 햇빛 잘 드는 곳에 두면 일주일 정도 후에 싹이 나온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씨앗도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혹시 실패하면 몇 번 더 심어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같은 초보를 위한 배려인건가 싶었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놓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일인 것 같은데, 어딘가 테라피적인 구석이 있다. 오늘 처음 만난 씨앗인데 벌써 싹이 나오길 기다리게 되는 이 마음도, 바쁜 일상 속에서 이렇게 천천히 무언가가 일어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새롭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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