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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컷을 잃어버린 여자에 대해
예프24. 11. 25 · 읽음 82

소설을 읽다가 이렇게 불콰한 인물은 처음 본 것 같다. 최 팀장은 보고서의 문장을 지적할 때도 더 섹시하게 쓸 수 없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홈쇼핑 사은품 선정 회의에서는 여성 동료의 의견을 무시하고, "항상 똑같은 건 집에서 보는 마누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며 성적인 비유를 섞어가며 조롱했다.    

몸집이 왜소해서 의자에 앉으면 잘 안보이는 희주를 보고 그는 일부러 숨어 있는 거냐면서 자주 칸막이 위로 얼굴을 들이밀어 희주를 내려다보곤 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발언을 할 때는 이 남자에 완전 질려버렸다.

배가 고프다는 희주 말에 최팀장은 이차를 가자며 다음 발언을 하며 인류애조차 없애버렸다.

자기가 배부르게 해주겠다고. 

배가 터질 정도로 부르면 육아휴직이나 들어가라고.

처음에는 최 팀장의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몇몇이 이차는 치맥이 좋을 것 같다고 맞장구치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희주가 웃고 있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괜찮냐고 묻는데 어깨가 들썩거리고 주먹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최 팀장의 멱살을 낚아챘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_일인칭 컷 中

소설 초반에 희주의 남자친구는 희주가 결혼은 커녕 비혼식을 하겠다는 말에 기겁한 적이 있다. 희주가 왜 비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지를 저 팀장의 짓거리를 보면서도 아직도 모르다니..

누구보다도 이 모든 상황을 제일 믿기 어려운 사람은 나였다. 비혼식이라니. 차라리 나와 결혼하기 싫다는 것뿐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연애는 해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라면, 내가 남자 친구 이상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거나, 법이나 제도로 묶일 수 없는 문제라면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초대해서 비혼식을 하겠다니. _일인칭 컷 中

​이래서 이 둘이 안 이루어지는구나. 희주가 외로울까봐 이 남자랑 결혼을 안하려고 하는구나.. 적확하게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희주는 성희롱으로 고발한 최팀장의 처우가 다른 팀으로 발령내는 게 아니라 다른 팀으로 가게 되는 것이 희주 자신인 것에 울분을 토했다.

남자친구는 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의문을 갖는데 나는 바로 이런 남자친구여서 그녀가 비혼주의를 주장하고 비혼식까지 여는구나 한번에 이해했다.

“난 그 사람을 용서한 적이 없는데 왜 네가 그 사람을 용서해준 거야?” _일인칭 컷 中

결국 희주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냈지만 그럼에도 왜 피해자인 희주가 직장까지 잃어야 하는지 공감을 넘어서 화가 났다.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성희롱을 참아내야 하고  피해자가 피해다녀야 하는  한국적인 사회의 면모를  직시했다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 때문에 꽤 불쾌했다.

그럼에도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을 짚어주는 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 '가만히' 라는 생각이 전염된다. 반박하기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라는 것을 한번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꾸러지면 좀 쉬었다가 또 말하고 하는 삶이라도 살아야지 숨의 쉬어질 것 같으니까.

소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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