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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냄새가 향긋했던 밤
김영혜24. 12. 11 · 읽음 134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그날 오전  급하게 예약한 미용실에 세팅파마를 하러 들렀고,  동네친구와 만나 도서관에 들러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나눴고, 그러다 어느새 어둑해진 초저녁이 찾아왔을 무렵 . 종종 거리며 다니느라 종일 끼니를 챙기지 못했기에 , 헛헛해진 배를 채우고자 골뱅이무침에 맥주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껏 부른 배에 하필 마음까지 들썩였던 탓이었을까. 나는 그만  인도경계석 사이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야 말았다.

 

누가 볼세라 마치 아픈걸  모르는 사람이라도 되는것 처럼  최대한 벌떡 일어서 걸음을 재촉.

 집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려버린 건지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 없었다. 하니 급한 데로 발목엔 파스를 치덕치덕 붙이고 , 압박붕대로 둘둘 감아둔 채 고단한 잠을 청했다. 

 

그날로  일주일 정도 지난 오늘에서야 발목은 제 기능을 회복한 모양 . 이른 아침부터 오랜만에 부지런을 떨며 두 아이 등교 전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욕실 청소까지 해버렸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작게나마  이룰 수 있도록 , 그저 건강할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 주였다.

 

 

침대에 가만 누워 좀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있을 와중 , 입은 왜 그리 궁금한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치커리와 함께 조물조물 무친 도토리묵, 바질과 계란 ,  토마토 소스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낸 에그인 헬, 사과,  단감,  귤,  삶은계란을 잘라 마요네즈에 양껏 투박하게 버무린 사라다, 제철인 굴로 부처 낸 고소한 굴 전,  뜨끈하고 감칠맛이 일품인 굴만두 국. 
쫄면, 양배추, 콩나물, 김가루, 당근, 깻잎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데 구운 만두를 무쳐낸 비빔만두가 머릿 속에서 영 떠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엊그제 밤 , 도저히 못 참겠다는 마음이 되어버린 나는 냄비에 쫄면라면을 삶고, 냉동실에 있던 군만두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놓고, 양배추, 당근을  채 썰고,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서둘러 우리 집 냉장고엔 없는 깻잎을 대신해 줄 초록의 채소를 생각해내고 있었다.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지난여름이 끝날 무렵 심어 기르고 있는 식물.  바질이었다.

 

 

깻잎이나 바질이나 향이 진한 것은  매한가지니 특별히 문제 될만한 맛은 아닐 것이란 일종의  확신까지 들 정도.  곁들여 먹을 어묵꼬치탕까지 .

지금 와 떠올려보니 그때의 나는 무서우리만치 집요한 집념을 보였던듯 하다. 한밤중 비빔만두를 먹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 

 

뜨끈한 어묵탕과 함께 노릇하게 구워진 군만두, 새콤,달콤,  매콤하게 무쳐진 양배추, 당근, 바질을 돌돌 감은 쫄면라면을 입안 가득 맛보니,  순간 행복을 맛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의 감각은 아닐까  싶어졌다.

내내 시큰했던 왼쪽 발목마저  어쩐지 개운해지는 듯했다 . 이를 테면 음식이 전해주는 일종의 치유 작용같은 느낌이었달까 .

 

 

비빔만두의 양념과 바질의 조화로움은 역시 썩 나쁘지 않았다. 입속 가득 퍼지는 그윽한 단내음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비빔만두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우리 가족의 정다운 이야기는 오래도록 끊이질 않았다.


지금까지도 물론 그랬겠지만 , 앞으로의 나 또한  어떤 날엔 종일 종종거린다거나 , 단지 헛헛해진다거나,  뾰족한 이유 없이 그저 들썩이는 마음이 된다거나 .

혹은 퍽 고단해진다거나   ,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를  어떠한 날,  여러 모양을 하고 있을 무수한 밤 또한 맞이하게 될 것이리라 .


그런 모습의 어느 날 중 .  향긋한 단내음을 은근하게 담고 있는 작고 야무진 초록 잎  . 아무튼 , 바질 잎사귀로  은은하고 나지막한 어떤 위로를 받는 밤이었다.  바질 냄새가 향긋했던 . 유난히 그랬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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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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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형님몬스테라와 아기몬스테라, 하트아이비, 스투키,이오난사를 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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