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열흘하고 하루가 지났다. 시간은 참 빠르다는 말도 이제 지겨워서 못할 지경이다. 보름 정도가 지나면 음력설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봄이다. 이렇게 어~하고 계산을 하다 보면 이제 막 시작한 한 해가 또 훅 하고 간다. 여하튼 시간은 빠르다. 체감되는 혹은 체감보다 빠른 그런 시간의 속도를 느끼다 보면 열심히 살라고 하는 재촉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냥 뭐 흘러가는 게 시간이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난 그 경계 어디 즈음에 적당히 서 있는 편이다.
새해가 온다고 특별히 뭘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예전에 한 번 정동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이거 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차도 막히고 힘들었다. 지구도 하나고 태양도 하난데 정동진에서 뜨는 해나 살고 있는 청주에서 뜨는 해나 매 한 가지인데 한 번이지만 뭐 그리 열심히 갔었는지... 결정적으로 그날 날도 흐려 정작 해돋이도 보지 못했다. 이후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고 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해돋이를 맞이하기 위해 무언 갈 해 본 적은 없다. 후에 새해를 맞이하는 첫 해돋이가 있다면 가는 해를 보내는 마지막 해넘이도 사람들이 보러 간다는 걸 알게 됐는데 해넘이는 한 번조차 보러 가 본 적이 없다. 굳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면 대단할 수 있는 해넘이와 해돋이는 내 삶 속에서 큰 의미가 없는 다른 사람들의 행사가 됐다.
매 년 별스럽지 않게 12월 31일을 보내고 1월 1일을 맞이했는데 30대 초반엔 마음이 참 힘들었다. 30대 초반이라고 하면 내 삶 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백수시절을 의미한다. 그 시절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있는 그런 시절이고 무엇보다 이러나저러나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해야 되나? 뭐 그런 느낌이 들어서 힘들었던 거 같다. 여차저차 원하는 대학에 가지도 못하고 처음과 두 번째 직장생활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때려치우고 백수생활을 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물론 백수생활의 시작은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생활 그리고 처음과 두 번째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기 때문에 일단 좀 쉬자, 에라 모르겠다 뭐 이런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30대 초반임에도 신나게 놀았던 거 같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놀 수는 없었다. 삶이라는 걸 반포기하고 그냥저냥 하루 벌어 하루 살 수도 있었는데 이왕 태어난 거 그럴 수는 없었고 이렇게 부족한 인간도 아들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으며 키워 준 부모님한테 할 짓은 아닌 거 같아 무언가 의미 있는 돌파구는 찾아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마침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왔다. 12월 31일 밤 11시 50분 정도였는데 어! 또 이렇게 한 해가 가네, 뭘 해야 되나? 됐다, 하긴 뭘 해. 그냥 하루 가는 거지 이러고 있었다. TV를 켜 놓고 제야의 종소리나 들으면서 하던 게임이나 하자 아니면 새해에 맞는 볼 만한 영화 없나 이러고 있었다. 누구와 특별히 약속도 없었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뭘 대단하게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소 답답하기도 했던 거 같다.
당시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문득 창가로 갔다. 무엇보다도 이래저래 답답한 마음이 제일 컸던 거 같다. 창을 열었다. 찬바람이 훅하고 밀려들어 왔다. 밖은 대로라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훅하고 밀려들어 오는 바람으로 인해 답답함이 가시는 것 같기도 했고 일순 숨이 멎는 거 같기도 했다. 창틀을 잡고 밖과 아래를 봤다. 높았고 추웠다. 다행히도 무엇보다 시원했던 거 같다. 추웠는데 시원했다.
나도 모르게 떠들고 있었다. 나쁜 기운 다 나가고 좋은 기운 들어오게 해 주세요. 묵은 기운 다 나가고 새로운 기운 들어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평소에도 심호흡을 하면 좋다는데 그 순간 심호흡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밖은 대로라 차들이 달리고 있어 심호흡을 해 봐야 매연만 신나게 마시는 거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흡~~~ 후~~~ 그렇게 5분 정도 어두운 밖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심호흡을 하다 추워 창문을 닫았다. 시간을 보니 해가 바뀌어 1월 1일이 돼 있었다.
이후로 나의 새해맞이는 12월 31일 밤 12시에 다시 말해 1월 1일 밤 12시에 창문을 열고 그저 묵어 있던 나쁜 기운이 나가고 새롭고 좋은 기운이 들어오길 바라며 어두운 밖을 바라보며 하는 심호흡이 됐다. 올해도 아직 어린 딸아이는 재우고 아내랑 술 한 잔 하다가 후다닥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했다. 역시 추웠지만 시원했다. 그리고 따뜻하기도 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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