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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에서는 상태 메시지를 안 바꿔도 돼요.
예프22. 11. 28 · 읽음 776

나는 달팽이 식당의 요리사이자 사장이다.

내가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하루 한 팀의 예약만 받는다.

2. 전날까지 손님과 대면 혹은 메일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3. 그 결과 손님이 먹고 싶은 메뉴는 무엇인지, 장래의 꿈이 뭔지, 예산 등을 알아본다.

어느날은 한 아이가 학교에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토끼를 위한 음식을 주문했다.

잘 닦인 싱크대 같은, 은회색의 예쁜 털.

귀 안쪽은 연한 핑크색,

커피 젤리처럼 촉촉하고 까만 눈.

지금까지 소중하게 길러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토끼가 먹게 될 음식이 뭘까' 보다 

토끼가 어딘가 이상하다.

​먹지를 못한다.

 

거식증에 걸렸다.

사람도 거식증에 걸리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은 후 겨우 한 입 먹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귀엽고 핑크핑크한 토끼를 어떻게 하면 낫게 해줄 수 있을까.

토끼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이내 알아차린다.

“토끼는 무기력하게 고독에 감싸인 채 절망하고 있다.”

무기력과 고독, 이 두 단어에 독자인 내가 마음이 덜컹한다.

​나에게 닥쳤던 무기력과 고독의 순간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더이상 교정, 교열은 못하겠고

(당시 칼럼은 쓰고 있어서 책 부록 정도는 쉽게 쓸 줄 알았는데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 쓸 수 있는 고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기력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다.

앞으로 밥벌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

어려서라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너무 좁았다.

하지만 그땐 그런 나여서 출판사를 다시 들어가는 방법 외엔

돈을 벌 자신이 없었다. 

살기 위해 제 2의 인생을 찾아 헤매였던 나.

그나저나 ‘나’는 토끼가 느끼는 무기력과 고독의 원인을 알아내야한다.

‘나’에게는 오로지 이 생각 뿐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토끼가 버려진 순간을 생각해본다.

토끼는 버려진 동안 상자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캄캄한 어둠.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 멀어지는 목소리.

희미한 빛,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과 고독.

슬퍼서, 한 번만 더 주인을 만나고 싶어서, 

한시라도 빨리 주인의 품에 안기고 싶어서

토끼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사는 것에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p.137 

토끼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나서

‘나’의 사고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토끼에게 당장 신용을 얻겠다는 생각 버리기.

2. 토끼는 비록 버려졌지만 그전까지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3. 결론은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토끼와 마주보는 자세로 간이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손바닥에 아까 구운 비스킷을

몇 개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끊임없이 토끼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불 속에는 조금씩

향긋한 라벤더와 비스킷의 달콤한 냄새가 퍼져 갔다. 불을 끄자, 토끼의 커피 젤리 같은 까만 눈동자만 바깥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토끼의 몸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139p

책 <달팽이 식당>은 하루에 한 팀만 예약받는 요리사 ‘나’와 그에게 음식을 의뢰하는 손님들의 사연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에피소드가 나의 마음을 휘젖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어떤 에피소드를 읽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 있고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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