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시점으론 어제 금요일, 업로드가 늦어지면 엊그제 금요일 그러니까 2025년 1월 24일 금요일에 아내와 시간이 맞았다. 여차저차 정오부터 오후 3시 30분 그러니까 딸아이 하원 전까지 시간이 났다. 우선 점심은 전날 뭘 먹을지 정해 뒀다.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청주에서 나름 유명한 떡볶이 집인데 사는 곳 인근에 얼마 전에 3호점이 생긴 걸 확인하고 언제 한 번 가자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는 금요일이 됐다.
점심을 떡볶이로 먹고 나도 넉넉잡아 2시간 정도가 남았다. 해서 뭘 할까 고민하다 만만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아! 그전에 떡볶이는 역시 맛있었다. 자주 찾는 가게인데 3호점엔 처음 가 봤지만 그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아 맛있게 잘 먹었다. 다만 오픈 시간이 정오였는데 딱 맞춰 갔더니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내주는 집인데 가래떡이 안까지 몰랑몰랑하게 익지는 않은 거 같아 조금 아쉬웠다.
카페 역시 사는 곳 인근으로 갔다. 한 1~2년 전인가 생긴 대형 프랜차이즈인데 처음에 한 번 가 보고 안 간 거 같다. 늘 지나다니면서 건물 유리창이 전체적으로 새까맣게 썬팅이 돼있어서 저기 뭐 장사를 하나 싶었다. 아직 그 자리에 있고 주차된 차량도 많아 하긴 하는 거 같긴 한데 늘 의아해했다. 그래서 한 번 확인도 해 보고 싶어 가기로 했다. 사실 카드 포인트로 결제금액의 50%를 이용할 수 있어 가기로 한 게 결정적이긴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혹시 진짜 안 하는 거 아냐 하는 기우 같지도 않은 기우를 했는데 웬걸 휘황찬란하게 잘 꾸며 놓고 장사를 잘하고 있었다. 손님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큰 카페를 잘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을 괜히 걱정했네 싶었다. 우선 자리를 잡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말이 2층이지 복층 형태로 돼있어서 층고가 엄청 높아 개방감이 상당했다. 어디 앉을까 둘러보다 계단 형태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는 통로 격의 계단이 있었고 양 옆으로 계단으로 치면 폭이 아주 넓은 계단 형태의 자리가 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형태였는데 벽이 없는 작은 방으로 봐도 될 정도였다. 바닥에 방석이 있었고 작은 상 같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보는 순간 자기 딱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갔다.
아내와 카페에 오면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아내가 커피를 안 마신다는 거다. 커피를 못 먹는 건 아닌데 즐기는 편이 아니다.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표현보다 더 커피를 잘 안 마신다. 그래서 늘 메뉴를 고르는 데 애를 먹는다. 이번에도 역시 메뉴를 뭘 골라야 하는 고민의 시간이 왔다. 카페에 와서 커피를 제외한 메뉴 중에 괜찮은 걸 골라야 하는 아내와 커피를 포함한 모든 걸 다 잘 마실 수 있는 나의 조금은 다른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한참 고민하다 아내는 음료대신 조각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럴 거면 차라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니까 늘 먹는 조각 케이크 먹지 말고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했다. 사실은 아이스크림을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었는데 뺏어먹을 심산으로 고르라고 했다.
나는 늘 먹는 아메리카노를 시키려다 다시 처음부터 메뉴를 훑어봤다. 예전에 바리스타로 일할 때 이런저런 메뉴를 많이 먹어 본 바에 의하면 아메리카노가 그야말로 물처럼 질리지도 않고 늘 먹을 수 있는 메뉴라는 경험적 결론에 의해 바리스타를 그만둔 이후에도 카페에 가면 거의 아메리카노만 시켰다. 메뉴를 고르는 게 귀찮기도 했고...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니 카페에서 이거 좀 마셔 달라고 오만 정성을 들여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주는데 매번 아메리카노만 먹는 것도 예의는 아닌 거 같았다. 그 이후로도 역시 줄곧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지만 문득 마음이 돌면 다른 다양한 메뉴를 곧잘 시켜 먹곤 했다.
이번에도 간만에 아내와 시간이 맞아 역시 간만에 와 본 카페니까 조금은 색다른 걸 시켜 먹어 보고 싶었다. 그때 다른 프랜차이즈엔 없는 메뉴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에스프레소였다. 물론 에스프레소를 안 파는 프랜차이즈는 없다.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마시는 카페의 웬만한 커피 배리에이션 음료들의 기반이 에스프레소이기 때문에 그 에스프레소 자체를 안 팔 수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여기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파는 메뉴뿐만 아니라 조금은 색다르게 꾸민 하나의 세트 형태의 메뉴를 팔고 있었다. 메뉴 이름에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플레이트’란 단어가 붙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고 함께 맛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무언가를 추가해서 하나의 판으로 제공하는 그런 메뉴였다.
오호~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프랜차이즈에서 에스프레소 자체를 메뉴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바리스타로 일할 때 에스프레소 자체를 시키는 손님이 오면 긴장을 했다. 앞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가 주로 마시는 여러 커피 배리에이션 음료들은 에스프레소에 물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걸 첨가한다. 그래서 원두 자체가 다소 질이 떨어져 에스프레소 맛이 별로여도 커피로써 향은 충분하기 때문에 첨가물인 물, 우유, 시럽, 크림 등으로 얼마든지 부족한 맛을 감출 수 있다. 그런데 에스프레소만 시키면 그런 어떻게 보면 꼼수를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에 뭐랄까 옷을 벗고 밖을 나가는 느낌이랄까? 물론 바리스타로 일할 때 질이 떨어지는 원두를 쓰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꼭 그런 건 어니지만 에스프레소를, 소주 한 잔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손님이면 보통은 커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원두 질이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긴장이 되기 마련이다. 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에선 웬만하면 에스프레소를 메뉴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자칫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실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에스프레소를 그것도 플레이트에 깔아서 그럴듯하게 내놓았기에 호기심이 동해 시켜 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냥저냥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좋아라 하고 쓰는 영어 표현을 빌려 보면 'so so~', 'not bad' 정도였다. 바리스타로 꽤 오래 일을 했지만 커피에 대해서 엄청난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그 미묘한 맛을 잘 보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본은 하는 거 같았고 갖춘 구색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이 지점이 결국 전문 용어로 호구를 낚는 마케팅 포인트 같긴 한데 커피 한 잔 시키면서 은근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 뭐 그 정도로 정성을 들여 호구 좀 잡아 보겠다고 살랑살랑 낚는데 이게 또 소비자로서 적당히 낚여 주는 것도 미덕인 거 같다. 아니 뭐 가격을 어마무시하게 비싸게 받아먹는 것도 아니고 아내랑 좋은 날 좋은 시간 맞아 함께 하는데 그 정도 낚여 주는 것도 괜찮은 하루였기에 오~ 괜찮은데 하면서 잘 마셨다. 참고로 아내가 시킨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는데 딱 한 숟가락 뺏어 먹었다. 메뉴를 얼추 먹고 아내는 잠깐 일을 봤고 나는 책을 조금 읽고 나서 딱 누워 자기 좋은 자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둘이 방석 베고 누워 한 30분 정도 잘 자고 나왔다.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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