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쓴다. 250220
이야기하는늑대25. 02. 20 · 읽음 172

 목요일이다. 일주일 중에 화요일과 함께 일이 제일 많은 날이다. 일 그러니까 업무라는 관점에선 화요일과 동일하지만 목요일은 오전에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킨 후 엄마를 보러 가는 개인적인 일정까지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엄마를 보러 간다. 요일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급한 일이 있으면 못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일주일에 하루 엄마를 보러 간다.

 

 

 이렇게 말하니 엄마가 어디 멀리 있거나 요양원 같은 곳에 있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그런 건 아니다. 엄마는 같은 청주에 살고 있다. 자차로 20~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다. 구가 다르고 동도 다르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는 아니어서 가까워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자연스레 설명이 됐지만 요양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변화가 있다면 이전부터 동생이 장사를 하면서 조카들을 그러니까 엄마 입장에서 외손녀들을 봐주기 위해 동생과 한참 같이 살다 동생이 가게를 정리하면서 엄마가 동생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됐다. 아빠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따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집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은 늘 엄마를 보러 갔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더 커졌다.

 

 

 모시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과 '고마 치아라 마. 됐다. 애저녁부터 혼자 살라고 했다.' 하고 말하는 엄마의 결정에 기대는 스스로가 민망해 더 꼬박꼬박 찾아가는 거 같다. 찾아가서 특별히 하는 건 없다. 나이가 든 엄마와 장성한 아들이 뭐 대단하게 할 게 있을까 싶다. 딱히 살갑지도 않은 아들이라 더 할 게 없다. 그저 보러 가는 거다. 미안한 마음에 면죄부나 좀 얻을 수 있을까 싶은 아주 이기적인 효도다. 점심 한 끼 얻어먹고 TV 좀 보면서 시답잖은 이야기 한 두 마디 하다 일을 하러 간다. 스스로의 미안한 마음의 면죄부를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덮고 엄마가 해 주는 밥 한 끼 얻어먹으러 가는 지극히 내 입장에서의 효도다.

 

 

 이후로 일은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해서 밤 10시 40분 정도에 끝난다. 이동시간등을 고려하면 9시간 정도 된다. 다른 요일은 이보다 적은 시간 동안 일한다. 직업 특성상 주말에도 일이 있어 일이 적은 것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물론 그런 애매한 상황은 철저하게 내가 만들어 온 것이다. 일이 하기 싫어 삐대다 만들어 낸 결과다. 다행인 건 조금 더 일을 많이 할지 오히려 적게 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결정마저 제2의 인생을 사니 어쩌니, 글을 쓰니 마니, 일을 때려치우니 옮기니 하면서 삐대 왔는데 이젠 더 이상 삐댈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어 일의 양(시간)을 슬슬 올려 가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 중에 제일 일이 많은 오늘 목요일이 싫으면서 동시에 좋다. 일단 싫은 이유는 당연하게도 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먹고살아야 하니 하는 거지 뭐 자아실현이고 나발이고 간에... 여하튼 놀고 싶은데 일을 하기 싫은데 일이 많은 날이니 좋을 리가 없다.

 

 

 난 자신한다. 돈 많은 백수가 되면 바쁘게 잘 놀 수 있다. 집안일도 해야 되고 책도 읽어야 되고 영화도 봐야 되고 게임도 해야 되고 드라이브도 해야 되고 좋은 카페도 찾아다녀야 되고 전국 각지의 지역 명소도 찾아다녀야 되고 더 나아가 돈 많은 백수니까 이코노미 말고 비즈니스석 타고 해외여행도 가야 되고 해외여행이 보다 원활해야 되니 영어랑 스페인어도 배워야 된다. 바쁘다 바빠! 돈 많은 백수 생활!!! 현실은...... 아 하하하하하하, 꿈같은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꿈이 일말이라도 실현되려면 당장 로또가(그것도 1등 당첨금이 한 백억 정도 되는 로또) 되지 않는 이상 오늘 같이 바쁜 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늘려야 된다는 것이다. 해서 어! 이거 뭐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한데 낚이는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바쁜 오늘이 뭔가 살아 있는 거 같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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