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필명이 이야기하는 늑대다. 그래서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 거 같은 글이지만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즉, 하얀 늑대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에 대한 대단한 서평이나 리뷰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글을 평할 수준이 아니기에 그냥 읽은 소감 정도를 써 보려 한다.
이 소설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었다. 재미있는 괜찮은 판타지 소설 없나 하고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알게 됐다. 책장에 꽂혀 있는 무수한 책들 중에서 눈이 갔던 이유는 첫째 제목이었다. 하얀 늑대들. 어, 나도 필명이 늑대인데 이거 뭐지 하면서 책을 뽑아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책이 양장이었기 때문이다. 양장으로 된 책은 나도 모르게 눈이 한 번 더 간다. 내면도 내면이지만 외형의 아름다움도 중시하는 내 성향에 의해 빳빳하고 두꺼운 표지의 양장을 좋아한다.
뽑아 들어 책을 펼쳐 보니 판타지 소설의 전형적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은 소설 속의 대륙 지도가 나왔다. 어느 정도 크기의 대륙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너 개의 나라가 표현돼 있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설정은 어떻게 잡아 나가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저 그럴듯한 나라 이름은 어찌 짓는 건지... 여하튼 지도를 보고 이어 첫 페이지를 조금 읽었다. 기사단의 캡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바로 책을 덮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제목과 양장에 혹해 뽑아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원래 빌려 보려던 책만 들고 나왔던 거 같다.
이후에도 도서관에 들를 때면 한 두어 번씩 들춰 보곤 했던 거 같다. 그러다 작년 10월쯤에 특별히 빌려 볼 것도 없고 해서 무심히 빌렸다. 1권의 초반은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뭐랄까 내용이 어려울 건 없었는데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과 조금 다르다고 할까? 약간은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갔다. 그 이질적인 느낌은 바로 소설 속의 주인공이 말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드래곤이 나오고 희대의 영웅이 칼을 휘두르거나 현란한 고위 마법을 쓰면서 악을 물리치고 그 과정 속에서 엘프, 드워프, 오크, 트롤 등의 도움도 받고 반목도 하고 뭐 그런 건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놈은 쥐뿔 아무것도 아닌 놈이 말만 잘하는 캐릭터라는 설정이다. 그래서 처음엔 살짝 짜증도 났다. 약간 이런 느낌, 이 새끼 뭐라는 거야.
그렇게 읽는 둥 마는 둥 마저 읽을까 말까 하던 차에 100p 정도가 넘어가면서 어느 순간 그런 설정이 익숙해지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권당 400p가 넘는 본책 9권을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외전인 10권, 11권이 도서관에 없어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연말이라 예산이 소진됐다고 해를 넘겨 올해 초에 다시 신청에서 최근에 받아 외전 2권까지 마저 읽었다.
처음에 말만 많은 주인공이 적응이 안 돼 힘들었는데 결국 그 설정에 빠져 들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외전은 다소 사족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용의 전개와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가 얼마나 쫀쫀하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지 재미도 재미지만 글 좀 써 보겠다고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소위 떡밥 회수도 딱 맞는 퍼즐처럼 깔끔했다. 오히려 너무 잘 맞아 들어 이거 뭐 애초에 다 이렇게 되려고 그랬네 하는 운명론적인 전개가 다소 허탈하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재미를 떨어트릴 정도는 아니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주인공은 정말 어마무시한 능력을 가진 주요 인물들과 함께 그야말로 거악과 맞서는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말빨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나간다. 이런 소설에서 다루는 흔한 클리셰 중에 하나가 아무런 능력도 없던 주인공이 이런저런 기연을 통해 능력을 얻게 되고 알고 보니 어마무시한 능력이 내재된 인물로서 그 능력의 봉인을 깨고 세계관 속 최강의 영웅이 돼 악의 무리를 물리친다 뭐 이런 건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끝까지 말빨로 조진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이 주는 나름 스펙터클하면서 판타스틱한 전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요소는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 더해서 특이하게 말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어쩌면 비범한(말빨이라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매력적인 그런 소설이었다. 다 읽고 이 소설의 작가랑 말싸움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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