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다.
“얼음 가장자리에 각이 잡힌 걸 보니 만든 지 얼마 안 된게 분명해.”
“할머니가 타 놓으신 건가.”
유리잔 바닥에 붙어 있던 종이가 툭 떨어졌다.
메모지였다.
[출근하기 전에 당 채우고 나가기️]
할머니 글씨가 아니다.
미슷가루를 준 사람이 세입자 악마였다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과연 마셨을까?
책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되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이게 궁금했다.
그리고 독자인 내가 내린 답은
그렇다. 이다.
팍팍한 삶에 누군가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던
‘나’에게 악마가 주는 위로는 꽤나 근사했으니까.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집 한채에 방이 여러 개가 있어
세입자에게 월세를 받고 있다.
최근에 악마가 죄인을 처단하기 위해 세입자로 들어와 살아
방문이 열릴 때마다
피냄새가 나거나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이외에는 문제 없다.
그보다 무서운 건 할머니 둘째 아들이다.
한번 집에 오면 집팔아 돈 좀 달라고 해
쑥대집을 만들어버린다.
‘나’는 할머니의 친손녀가 아니라
아무말 못한다.
할머니가 잘해주었는데도
잘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착한 어린이병에 걸린 ‘나’
할머니 몰래 대학교도 안 가고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겨울이라서 그런가
방안이 따뜻해서 그런가.
‘나’의 뼈에 사무친 외로움과
불안정한 생활에 쉽게 몰입된다.
더구나 악마 너무나 매력적이다.
역시 미숫가루 주는 것을 모양새를 보니
악마는 다정하고 따뜻하다.
‘나’가 순간 순간 느끼는 몽글몽글한 감정에
공감한다.
악마가 ‘나’에게 준 근사한 선물들
하나씩 풀어볼까나…
좀 있음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산타를 기다리던 어린이 때로 돌아간 느낌.
어느 날인가.
그놈이 또 집에 찾아왔다.
할머니 둘째 아들,,
어디서 술 한잔 걸치고 온 건지
택시비도 안내고 택시기사랑
자신의 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여
경찰을 불렀다.
수습을 대충하고
집에 돌아갔는데
악마가 뭔가 아는지
‘나’에게 수제 맥주를 근사하게 만들어 준다.
시원한 탄산이 식도를 뚫고 위장에서 소용돌이친다..
아, 아아아아,
진짜 죽을 것 같다.
그래, 이게 맥주가 제일 맛있는 순간이지!
죽도록 일한 뒤 자기 전에 한 잔!
갈증이 해결된 뒤에는 속도를 줄여 맛을 음미했다.
“저기요, 왜 자꾸 먹을 걸 주시는 거예요? 미숫가루도 타주고, 맥주도 주고, 게다가 할머니 몰래 문도 열어주고…”
“그런 농담 아세요? 저도 우리 죄수한테 들은 농담인데, 너무 웃겨서.
신은 인간에게 감자를 선물했다면, 악마는 감자를 튀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이 밀가루를 선물하자, 악마는 그걸 반죽해 튀겨 설탕을 발라주었다.” 91p-92p
어느 순간 악마가 악마로 읽혀지지 않는다.
‘나’를 항상 지켜보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내 제공하다 못해 마음을 사르르 녹게 하는 멘트로 웃게 만든다.
그래, 악마면 어때,
팍팍한 인생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인데….
“최근에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
“당신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요.”
네?
악마의 이 말 한마디에
독자인 난 KO패 당했다.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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