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보다 30분 정도 더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췄다. 맞춘 알람은 끄라고 맞추는 법. 알람이 울리는 순간 번개 같은 속도로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5분 만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뒤척이다 일어났다. 다행히 지난주 보다 15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대전으로 가는 길은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않지만 잊을 만하면 한 두어 번씩 다니는 곳이라 길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하기도 한 대전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했다. 출퇴근 시간에 국도에 갇혀 있는 게 맞는 건가 돈을 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맞는 건가? 대전이라 큰 차이가 없어 보통은 국도에 갇히는 편을 선택하곤 한다. 시간을 버리는 쪽이라는 소린데 그래서 큰 부자가 못 되는 거 같다. 부자는 돈을 버리고 시간을 선택한다고 하는데 난 그게 잘 안 된다.
여하튼 지난주 보다 다소 여유 있게 도착했다. 주차하는 아파트의 지형도 한 번 와본 곳이라 익숙해 주차를 하고 빠져나가는 시간도 지난주보다 조금 더 절약됐다. 그렇게 도착하고 어영부영 자리를 잡는 와중에 교육이 시작됐다. 지난주엔 테이블이 있어 자연스레 같은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끼리 한 조가 돼서 교육을 받았다면 이번 주는 테이블을 다 치우고 의자만 둥그렇게 놓아두었다. 오늘은 뭘 하려고 이러나 하는 궁금증을 끌어안고 강사를 바라봤다.
첫 시간은 이름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인간관계론이라고 하는 큰 주제에 걸맞게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거의 첫 순서라고 할 수 있는 상대의 이름을 잘 외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그래서 뭘 어떻게 외우겠다는 건가 싶었다. 더불어 교육생 20여 명 중에 이미 10명 정도는 이름도 얼굴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굳이 뭐 알 필요가 있나 싶었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들으며 시간을 보내면 되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행이 되면 될수록 아하! 이렇게 이름을 외우는구나. 상대방을 이름 하나만으로 이렇게 알아갈 수 있구나 싶었다. 각자의 이름으로 지어 온 삼행시를 서로 발표하며 상대방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외쳐주는 행위를 통해 순식간에 20여 명의 이름을 다 외워 버렸다. 20여 명의 이름을 외우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외우니 지루하지도 않고 삼행시를 통해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보다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었던 거 같다.
더불어 교육받는 내내 머릿속에 시인 김춘수의 시 <꽃>이 계속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신나게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외치며 첫 시간을 마쳤다. 이어진 시간엔 용기 개발이라고 해서 지난주에 준비해 온 비전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단한 건 아니고 각자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 뒤의 변화된 모습을 이루어졌다고 상상하며 목표와 실천방안 등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한 명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2분 남짓이었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건 2분이라는 시간의 제약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자칫 주저리주저리 자리를 깔고 하염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임팩트 있게 발표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발표하는 걸 딱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고 난 건지 알게 모르게 연습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누구 보다 먼저 앞에 나서진 않지만 나서게 된다면 별스럽지 않게 발표를 하고 발표를 잘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앞에서 발표를 하건 크게 떨지는 않는다. 종합해 보면 난 사람들 앞에 서서 떠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같잖은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발표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저렇게 떨 일이 아닌데... 아이고 저렇게 땀을 흘리면 발표하다 살 빠지겠네 하는 마음으로 보다 보면 안쓰러움을 넘어 안타깝기까지 했다.
해서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떨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잘) 할 수 있을까? 잘이라는 단어에 굳이 괄호를 친 이유는 뒤에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내가 무슨 발표나 강의를 전문적으로 하는 프로 강사인가 싶겠지만 난 프로는 둘째치고 전문 강사도 아니다. 솔직히 강사를 꿈꾸고 있긴 하지만 뭐 이래저래 꿈만 갖고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떠들 자신은 있는데 이거다! 하는 컨텐츠가 없어 아무 말이나 떠드는 사기꾼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발표를 (잘) 하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도 잘이라는 단어에 괄호를 쳤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나처럼 전문 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표를 잘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전문 강사가 아닌 내가 떨지 않고 발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누구라도 별스럽지 않게 마음만 조금 달리 먹으면 적당한 수준에서 발표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어떤 발표가 됐든 결국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내 이야기를 발표하는데 도대체 왜 떠는지 모르겠다. 발표라는 표현도 치우자. 그저 내 이야기를 할 뿐이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할 때 떠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과 맥락은 크게 다를 게 없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조금 많고 알고 있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일 뿐이다. 결국 그 지점이 떨게 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 이야기를 한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두 번째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부분인데 발표를 잘하려고 애를 써도 너무 쓰기 때문에 떨게 되는 것이다. 물어보겠다. 당신이 전문 강사인가? 전문 강사도 아닌데 왜 전문 강사인 것처럼 행세를 하는가? 청중은 알고 있다. 당신이 전문 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당신이 청중을 휘어잡는 귀신같은 언변으로 혼을 쏙 빼놓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미 청중은 당신이 전문 강사가 아닌 걸 알고 있는데 즉 당신이 발표하는 도중에 떨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조금 잔인하지만 청중은 당신의 발표에 큰 기대가 없는데 왜 되지도 않는 전문 강사의 마음으로 발표를 잘하려고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가 이 말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저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으로 덤덤히 하면 그만이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몇 가지 더 이야기해 보면 말을 크게 할 필요가 없다. 발표를 하다 보면 안 그래도 떨려 죽겠는데 내가 이 정도 에너지를 쏟으며 발표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잘 듣고 있나? 혹시 내 목소리가 작아 못 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그러니 목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없다. 알아서 점점 커질 것이다.
말을 빨리 할 필요가 없다. 역시 떨리고 부담되는 발표를 빨리 마무리 짓고 내려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쉼표 없는 무호흡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은 하면 할수록 절대적으로 빨라질 수밖에 없다. 더해서 기본적으로 발표라고 하는 것이 보통은 제한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이 빨라진다. 그러니 내가 먼저 말을 빨리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나는 숨이 차 죽을 거 같고 청중은 저 양반이 저러다 쓰러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죽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선은 발표를 하다 보면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몇몇이 있게 마련인데 그들과 번갈아 눈을 맞추면 된다. 정말 만약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청중의 중앙 어디 즈음을 적당히 쳐다보거나 생각하는 듯이 가끔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이런 부분은 사실 뭐 특별히 정해져 있기보다는 그저 내 이야기를 덤덤하게 한다는 큰 전제 아래 자유롭게 행동하면 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손의 위치인데 민감하게 격식을 차리는 자리가 아닌 이상 내 손인데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편하면서 부드럽게 휘두르면 좋을 거 같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발표 내내 두 손을 부여잡고 앞으로 공손하게 모아둘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경례를 하려고 준비를 하는 건지 시종일관 차려 자세로 서 있을 이유도 없다. 그저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의근으로 이루어진 손과 팔이지만 불수의근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내 팔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대로 그냥 두면 좋겠다. 물론 개중엔 그게 과해 박쥐 한 마리가 퍼덕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정도만 경계하면 될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 도중 적절한 손짓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개인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공손하게 모은 채 이야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대전제인 내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 자리인데 대표적으로 경직된 자세인 차려 자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고 영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전문 강사도 아니고 전문 강의를 배워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업계에 있는 그야말로 전문가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듯이 덤덤하게 하는 자리에서 만들어진 자세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저 눈에 나지 않을 정도로 바르게 서서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와 속도로 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과정일 뿐인데 정해진 자세라니 뭔가 아닌 거 같다. 딱히 세세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는데 하다 보니 과하게 세세하게 이야기한 거 같다. 이쯤 되면 아마 다시 돼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러면 너는 발표를 잘하냐고? 그럼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한 번도 발표를 잘한다고 한 적이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지 않을 뿐이라고.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는 별개다. 더불어 계속 이야기했지만 난 전문 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딱히 잘할 필요도 없다.
이야기하는늑대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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