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하다는 동굴 탐험에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둡고 축축한 공간을
환하게 밝혀주는 새.
순간적으로 환해지는 그 황홀한 느낌이라….
찬란한 깃털은 말해 뭐해.
이름하여 레인보우 버드
깃털이 뭐 오색찬란해서 붙여진 이름일까.
그런데 어두침침한 동굴에 있는 새 깃털 하나 뽑겠다고
들어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너라면 핫한 그 동굴 가보겠니?
책 <테스터>에서 200년 전에 멸종된 새, 레인보우 버드가
포함된 여행 상품을 마케팅하려고 만든 카피에 대해
제작자와 회사 팀장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살짝 각색해봤다.
“레인보우 버드 동굴 투어를 광고하면서, 동굴에 새 잡으러 갔다가 죽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 팀장의 반응은 나와 똑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다
이어지는 쿠의 설명에 납득이 간다.
인간이란 기묘한 마력에 끌리는 법
인간이 좋아하는 건 선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더 악한 존재를 좋아하는 법.
왜냐고?
그런 존재이야말로 나, 너, 우리의 치부를 교묘하게 가려주니까
책을 다 읽고나니 이 대목이 떡밥이라는 걸 안다.
흥미롭게 읽던 작품이 한순간에 호러로 장르를 바꾸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충격이 덜 했을까?
인간들이 덜 징그러웠을까?
햇볕에 닿으면 녹아버리는 새하얀 존재
16살이나 먹었는데 낮에 외출해 본 날이 거의 없는
그럼에도 회장의 손자라는 이유로
치료제를 맞아가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아이 마오.
그 아이 앞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
할아버지가 추진하고 있는 화성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의 미래에 마오는 ‘쓸모없어져서 결국 사람들에게 버려질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마음 약한 소년일 뿐이다.
책을 다 읽고 이 장면을 다시보면 이런 걱정조차
귀여운 투정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또 인간들이 싫어지지.
이야기가 샛길로 샜다.
다시 마오 앞에 나타난 소년에 대해 이야기봐야지.
소년의 이름은 하라.
하라는 나이가 좀 더 많고
색깔을 볼 수 없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흑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온 몸이 하얀 마오는
그대로 보인다.
몸 여기저기에 검붉은 멍이 있다.
바이러스 부작용 때문에 그렇다는데
해도해도 너무 한다.
그런데 있잖아. 마오야.
독자인 나는 네가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가질 때마다
인간들이 소름끼치게 싫어져.
그놈의 레인보우 깃털을 가진 새 때문에
그놈의 새 복원시키겠다고 하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번졌다.
무수한 희생자들이 나왔고
단 둘만 살아남았다.
마오와 하라.
장르가 드라마에서 호러로 바꿔진 것만으로도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확실히 전해졌다.
그리고 여운까지 남는다.
희귀한 새의 깃털을 탐내던 사람들의 드글드글한 욕심
화성 프로젝트랍시고 들먹이면서
실험용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해
확인되지 않은 화성에서의 삶을 부추겼다.
미래가 아니라 미래 이후의 삶이 가져올 온갖 비극들을 미리
맛보게 한다.
작가의 예지력이란(상상력)……
악몽을 꾸게 할 만큼 현실적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작가가 미래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
미래의 부정적인 단면을 본 나는
이제…어떻게 살 것인가.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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