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주에 왔어요?”
“초록색을 그릴려구요.”
“초록은 식물이란 의미군요.”
“아뇨, 초록색입니다.”
“네엣? 색을요?”
책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에서
‘나’는 초록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왜 초록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조금 힘들다.
위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스케치북과 물감을 들고 왕립 식물원으로 향했다.
한여름 햇볕을 위한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
싸온 레모나이드 한 모금 마시고
종이 팔레트에 물감을 짠다.
노란색과 파란색.
느낀대로 두 색깔을 배합해
초록색을 만든다.
청량감에 ‘좋다’ 싶다가
누군가가 말 건너는 통에 현실로 돌아온다
손수건을 떨어뜨렸나보다.
그가 주는 손수건을 전해받자
그는 ‘내’가 그린 그림을 슬쩍 보며 말을 건다.
[초록색 물감은 사용하지 않는군요]
[맞아요. 나의 초록이니까요.]
기본은 노랑과 파랑, 거기다 여러 가지 색을 조금씩 섞어 만든
나의 초록색.
그가 알아봐줬다.
조금 친해졌다 싶어 말을 놓았다.
[안 물어?]
[응? 뭘?]
[왜 이렇게 초록색만 그리느냐고.]
[이유가 필요한가.]
[초록색만이라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전부 다른 색으로 보여.
이 초록색 속에는 여러 가지 색이 들어 있잖아.
하나같이 멋져. 기쁜 일도 즐거운 일도 외로운 일도 화나는 일도 사람도 열정도. 다 전해져.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많이 그려주었으면 좋겠어.] p.114-115
…그럼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나’가 말하고 싶었던 말.
말할 대상이 없어 마음 속 깊이 숨겨놓았던
마음을 토해내는 순간
독자인 나도 나자신에게 묻는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좋으면서
항상 생각이 많아지는 거
그래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거
이런 나를 한심해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은 걸까.
딱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세상의 잣대에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채여 생채기가 난다.
이런 난데 지금처럼 나를 사랑해도 될까.
아오야마 미치코가 쓴 글들을 모조리 읽고 싶어졌다.
남들이 어리광이다 쓸데없는 고민이다 싶은 생각조차
소중하게 들어주고 옆에 머물러주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나’가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펑범하지 않다고 가족조차 인정하지 않는 삶 속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이 있다면
‘자기에게 딱 맞는 한 장을 찾는 거’라고 이야기해주니
숨 쉴 구멍 하나는 생겨난 느낌이다.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속 이야기를 읽다보면
숨이 쉬어진다.
오늘은 내 고민거리를 생각나게 한
에피소드 <카운트 다운>에 대해 이야기봤다.
단언컨대 어느 에피소드를 읽던
잠시 쉬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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