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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예프23. 01. 17 · 읽음 289

사랑, 아니 슬픔 때문에 사람이 미칠 수도 있는 걸까?

이 말 하나로 <가장 나쁜 일>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다. 사실.

2독을 하러 책을 펴들었을 때

그리고 또다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한동안 이 문장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

이 단어가 주는 묵직함과 절절함이

나에게 유독 다가오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요즈음 내가 이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와 그리고 지인들에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고

사랑해서…

내가 갖지 못하는 강인함과 추진력, 트렌드에 적절하게 적응하는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던 아빠에게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해도 응원해주고 

관심이 없더라도 작업들을 보여달라고 

한마디 더 얹어 이야기해주던 지인들에 대해 

요즈음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고 있다.

다시 일어나봐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 이때문인 것 같다.

<가장 나쁜 일>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플롯이 촘촘하게 잘 짜여 있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을 때는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보다는

하루아침에 아내가 실종된,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진 남은 배우자의 절절함에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아빠의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제라도 남편이 나타나 “놀랐지?” "이제부터 열심히 살자."

그렇게 한바탕 울고 때리고 이 끔찍한 해프닝을 끝내는 상상을 하던

정희를 보며 나도 간절히 그런 판타지가 그녀에게 딱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기를

함께 빌었다.

소설을 읽다보니

작가가 작정하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등장하는 인물 이선영의 강박증세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의 

휴우증이다.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물건을 계속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

그래서 폐품을 빼앗겼을 때 자신이 공격을 당했다고 상대방을 칼로 찔러 버린 것.

처음 읽었을 때는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를 추리하기 바빴는데

2독을 하게 되니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심정만이 보인다.

실종된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끝내 그녀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실망감과 사랑의 두 감정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철식을 보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인간을 믿지 않던 철식이

자신의 아내만은 믿게 되는 사실과

자신만큼 아내를 사랑하는 성훈의 마음을 겹쳐보게 되는 장면은

처절해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사람이 돈을 쫓게 되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세상의 잔혹성과 

그 잔혹한 흐름에도 사랑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빠져 한두권씩 읽어내려가고 있는데

작품성과 시의성 있는 주제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잡은 소설은 처음 봐서

작가의 이력을 보니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걸 보고

그 필력 어디가지 않았구나 싶었다.

정희는 남편 성훈이 바람 나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철식은 아내가 그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려고 했다는 

예측이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성훈과 록혜의 그들에 대한 진짜 마음이 드러난다.

그저 망상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의심은 남편이 바람난 것 같아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희는 이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훈은 정희가 이 병원에 있는 줄 알고, 화분을 주문하고, 호박죽을 포장했다. 그리고 성훈에게 그런 거짓말을 해서 그를 죽게 한 사람이 지금, 이 건물 안에 있다. p.322

철식이 성훈을 협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든 그이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웠어요. (수술비를 대지 못해 죽게 된) 아이의 마지막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 그래도….. 무서웠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어요, 오래오래…..”p.421

​가까이 살면서도 그 사람 속내 하나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

자신을 배신했는데도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게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닐까.

성훈과 록혜의 진심보다도 

그들을 찾는 동안의 정희와 철식이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마음에

더 마음이 간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 받으며.

오늘 하루 어땠어?

별일 없었어?

아, 바깥바람 쐬니까 좋지?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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