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요. ”
이 문장을 보다 보니 ‘준비된’이라는 단어에 반박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로의 조건을 요구한다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이 말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으니 이 반대어가 나에게는 더 자연스럽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을 열면서도 반쯤은 닫는 것'..
'다가가면서도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불완전해보이는 것,
‘자신의 심장을 감전시켜 따뜻하게 만드는 노란 전기’ 같은 것,
‘서로 떨어져 있으면 너무 외로워져서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서로를 찾는 것. 그러다보면 외로움을 참을 수 있는 것.’
나에게는 이런 게 사랑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역동적인데 준비된 사랑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는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이두온의 책 <러브 몬스터>를 보며
차마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읖조려 본다.
나의 학창시절은 사람에 대한 갈구로 시작해서 갈구로 끝났다.
지금까지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달고 살아가리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았을까?
나에게 꼭 맞는 상대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면
외로움이 끝날 거라는 잘못된 명제 속에서 갇혀 있지 않았더라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
학창시절에 몰랐던 것을 지금은 꽤 많이 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시절의 미숙함과 혼란들을 지금의 윤택함과 바꾸고 싶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고. 갈구했고, 채워주려고 하면서
행복했으니까.
하루에도 몇번씩 희로애락의 감정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그 시절을
지금 나는 부러워하고 있다.
<러브 몬스터>의 등장인물들이 사랑을 찾아 미쳐버리는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신하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는 데 에너지를 쏟기에 지쳐있다고 해서’
준비된 사랑을 찾아나가는 순간
그 사랑은 더이상 사랑이라 불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동안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느꼈던 감정을
이두온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죽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여준다면 어떨까. 나는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말 텐데..”
지금 내가 관계맺는 사람들을 둘러 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인간관계에 지름길이 있다면
내가 가꿔온 길은
돌고 또 돌아 중간에 길을 잃기도 하면서 다져온 길이다.
그럼에도 나에겐 소중한 길.
그러면 됐다.
내가 행복하면 됐다.
예프
사람을 좋아하고 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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