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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페페 1세로 주고 수박페페 2세로 받다
추희자두23. 03. 08 · 읽음 468

1년 전 봄이었다.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집들이 선물로 식물 화분을 가져갔다. 초보 식집사인 친구를 위해 키우기 쉽고 손이 안 간다는 수박페페로 골랐다.

 

수박페페는 수박페페로미아의 줄임말인데, 보면 바로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한 번에 알게 된다. 동글동글한 잎에 진한 초록 세로 줄무늬가 죽죽 그어져 있는 것이 영락없는 수박이다. 꼭 아기 수박들이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것 같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수박페페를 지켜줄 고양이 모형까지 흙 위에 얹어 무럭무럭 기운을 듬뿍 담아 보냈다.

 

그 후 약 1년만에 친구의 집에 다시 놀러 갔다.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거실 한켠에 마련된 있는 식물상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반가웠지만 수박 페페의 안부도 궁금했다.

 

친구가 키우고 있는 식물들. 번식한 수박페페는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수박 고양이가 수박 페페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해준 걸까? 창가, 주방, 침실 등 집안 곳곳에서 새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1개였던 수박페페 화분이 무려 4개로 늘어난 것이다! 수박페페말고도 못 보던 식물들도 가득했다.

 

친구는 그동안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박페페를 열심히 번식시켰다고 했다. 집안을 둘러보니 그동안의 지극정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친구는 자기 장기인 뜨개질로 수박페페를 위해 화분 커버까지 만들어 줬다. 마냥 초보 식집사인 줄 알았던 친구가 안 본 사이에 베테랑 식집사로 거듭난 것이다.

 

번식을 위해 수경 재배 중인 수박페페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조금 주고 그 대가로 몇 곱절이나 더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나는 수박페페 화분 1개를 주고 수박페페 화분 1개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까지 얹어 받았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이 맞다.

 

"준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하지 않아?" 늘 퍼주기만 하는 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베풀면 그 이상으로 보답받을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수박페페를 안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그 대답이 스쳐 지나갔다.

 

뜨개 화분 커버를 입히니 더 귀여운 수박페페

 

작은 화분 하나로 이렇게 풍족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인간관계는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라 남는 장사였다. 이 놀라운 비밀을 잊지 않고 내 품에 있는 수박페페 2세를 정성스럽게 보살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에 얹어 받은 마음도 두 배, 세 배, 열 배로 키워 더 많은 사람에게 널리 퍼뜨릴 것이다.

 

페페 가문이여, 대대손손 번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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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희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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