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비가 개고 따뜻했던 날씨가 추워지긴 했지만 봄 소식을 알리는 비임에 틀림없다. 비를 맞으면 쑤욱쑤욱 자라는 풀과 나무들이 어떤 꽃망울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산책길에 나섰다.

요며칠 날이 따뜻해서였을까, 봄비를 담뿍 머금어서일까. 개나리 덤불에 며칠 전만 해도 없던 꽃망울이 삐죽 솟아 올랐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인듯 한데 그래도 삐죽 내민 노란 고개가 반갑고 예쁘기만 하다. 곧 만나게 될 작고 노란 꽃들을 기대하며 길을 걷는데 이웃 담벼락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아직 개화 시기가 아니라 의아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진 개나리꽃이라 꽃이 만발한 걸까 생각하며 다가갔는데 개나리를 닮았지만 개나리가 아닌 이름모를 꽃이 나를 반겨주었다.

멀리서 보면 개나리꽃이다 싶을 만큼 개나리와 닮아 있는 모습이다. 처음 보는 예쁜 이 꽃에 발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고 이름을 물어 보았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의 영춘화, 이 꽃의 이름이다. 나만 헷갈린 것은 아니었는지 길 건너 걷던 모녀도 다가와 꽃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아직 피어있으면 안될 꽃이 피어있어 의아했고, 다음에는 개나리와 닮아 있지만 개나리가 아니어서 의아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이 꽃은 개나리와 생김새가 달랐다.

노랗고 작은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것은 개나리와 같지만 꽃잎의 모양이 둥글고 장수가 많아 보인다. 실제로 개나리는 꽃잎이 4장, 영춘화는 6장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영춘화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꽃은 개나리보다 이르게 핀다. 일본에서는 매화와 같은 시기에 꽃이 피어 황매라고 부르고, 서양에서는 겨울에 펴서 겨울 자스민이라 부른다고 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영춘화를 개나리 닮은 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나리와 영춘화는 쌍떡잎식물 물푸레나무과에 같이 속해있다. 친척뻘 되는 꽃인 셈이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꽃이지만 영춘화는 나름 역사성을 지닌 꽃이다. 설중사우(雪中四友)라 하여 옥매(玉梅), 납매(臘梅), 동백꽃, 수선(水仙),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네 가지 꽃을 일컬었는데 이 중 납매가 영춘화를 말한다. 옥매는 흰매화, 납매는 납월(섣달)에 피는 매화라 하여 영춘화, 수선은 수선화이다. 겨울 추위를 견디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니 선비들이 좋아할 만 했으리라. 그래서인지 영춘화는 조선시대 장원급제자의 관모를 장식하는 어사화로 쓰이기도 했다.
올해 내 첫 봄꽃은 영춘화였다.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 벚꽃과 매화, 복숭아꽃과 자두꽃, 매년 봄마다 헷갈리는 봄꽃들을 외우고 공부하곤 하는데 이제 개나리와 영춘화도 그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루디린
이것 저것 읽고 보고 듣고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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