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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따위는 없다
달덩이23. 03. 18 · 읽음 135

새해가 되면 으레 하는 인사, "올 한 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결혼하는 친구에게 건네는 인사,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인사를 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없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괴로움, 안 좋은 일이 인생의 기본값인 것 같다. 너무 부정적인 걸까?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단순한 푸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싫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잘 살고 싶을 때 되뇌면 도움이 될만한 유연한 태도다.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면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너무 힘들다. 반대로 이 세상은 원래 고통이 기본이다,라고 마음먹으면 예상치 못한 힘듦이 눈앞에 닥쳐도 크게 충격을 받지 않고 의연하게 해결해 내거나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본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각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늘 좋은 일로만 가득하길 바라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와 너의 꽃길을 염원하지 않는 이유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때 이런 글들을 종종 썼다.

 

결혼하는 친구에게는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겠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현명하게 이겨내고 이걸 계기로 둘 사이가 더 단단해지길!"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는 뱀이 그려진 양말을 선물로 주며 "뱀같이 꼬였지만 너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휘적휘적 걸어갈 수 있길"

 

뱀 양말을 받은 친구는 종종 저 말을 생각하며 기분 좋아지고 싶은 하루에 그 양말을 즐겨신었다고 했다.

 

 

흠모하는 임경선 작가님의 책 <호텔 이야기> 첫 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인생의 쓴맛을 피하지 않는 우리에게'

 

인생의 쓴맛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쓴 걸 먹으면 바로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뭔가 안 풀릴 때 잔뜩 풀이 죽어있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 안에 깊이 빠져있지 않고 지혜롭게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 좋은 일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내게 온 좋은 일들을, 그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즐기고 싶다. 꽃길을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꽃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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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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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여정 속에, 4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는 IT 스타트업 직장인. 관심사는 채식과 미니멀리즘,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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