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참 좋아하지만 단 한번도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다. 혼자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화를 혼자 보러 간적이 없고, 공연을 혼자 감상한 적이 없다. 훌쩍 떠나 어딘가를 다녀온다는 것을 상상한 적도 없다. 오로지 미술관은 유일하게 혼자 다니는 곳이다.
10년전 여름 '이집트 나일 쿠르즈' 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홀리듯 여행사 사이트를 방문했다. 고대 문명의 도시 카이로에서 이집트의 유명한 유적 피라미드 , 스핑크스, 이집트 박물관을 보고 남쪽 아스완이라는 곳으로 내려가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고대의 신전이며, 왕들의 묘가 모여있는 왕가의 계곡을 보고 홍해바다를 지나, 사막을 가로질러 사막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다시 카이로로 올라오는 일정이 왠지 근사했다. '나일크루즈라...' 아가사크리스티를 좋아하는 내 머리 속에 '나일 살인사건'이 스치면서 '여기나 한번 가볼까?' 구미가 당긴다.
그해 여름 나와 동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딸들에게 매번 엄마와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할 수도 없다. 자꾸 자식으로부터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거두어드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를 되내이지만, 바득바득 다가오는 출발 날짜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언니들은 ' 왜 못가? 혼자 할 수 있어. 비로서 홀로 서기를 하는 거야 !' 라며 나를 응원했다.
내가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따라만 다니면 되는 패키지 관광여행을 떠나는 것조차 혼자가 싫었다. 왜냐하면 패캐지 관광여행은 대게 가족단위로 온다. 더러 아주 드물게 친구들끼리 오기도 하지만 'H 관광'의 경우 지긋한 부부들로 모객이 되기 때문에 늘 내게 관심이 집중되곤 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왜 남편이 안왔는지, 남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등에 대한 궁굼증을 꺼리낌없이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늘 ' 남편은 사업해요. 너무 바뻐서 같이 못나왔어요.' 라며 없는 남편을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심지어 내 나이 또래의 부부들일 경우 나는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서 되도록이면 그들과 가까이 가지 않고, 제일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과 함께 식사자리를 택한다. 어쩌면 나의 피해망상일지 모르나 나는 부인들의 경계의 눈초리가 너무 싫었다. 나는 굉장히 자신만만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있다. 쓸데없이 그들에게 내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나는 그들의 눈에 띠지 않게 하므로써 그들이 신경쓰지 않게 나의 행동에 제약을 가한다.
여행에 대한 일정과 정보를 읽어 보고 내가 그자리에서 '예약' 버튼을 누른 것은 이 여행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였다. 이집트 여행은 겨울이 성수기지만 나는 여름방학에 떠난다. 너무 더운 날씨여서 새벽 이른 시간에 신전이며 유적지를 둘러보고 많은 시간 선상 객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인분의 객실 요금을 지불하고 나는 혼자 방을 쓰기로 했다. 오로지 제대로 된 혼자 여행을 해 볼거라 다짐하고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저녁, 함께 가신 분들과 열흘 동안의 긴 여행을 잘 부탁드린다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왜 혼자 왔는지, 남편은 무엇을 하는지, '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궁굼해 했지만,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느껴지는 텐션은 굉장히 편안했다. 나는 이 편한함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 아.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라는 결론이 떠올랐다. 나는 나이드는 것이 싫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이 들어서 ' 자유'를 얻었다고나 할까? 여행인구의 연령이 많이 낮아졌다. 대부분 40대 부부들이었고 나는 50대였다. 그들은 나를 언니같이 누나 같이 너무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부부들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혼자 책을 읽거나 선상에서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내게 다가와서 '교수님 맥주 한잔 하시지요' 라고 했다. 그들의 호의가 고마워서 나는 맥주를 사고 와인을 샀다. 나의 호의를 그들은 기꺼이 받아 주었다. 나이가 드니 적당히 돈을 써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서 참 좋았다. 교수님에서 여사님으로 호칭이 바뀌더니 "여사님 ! 간 큰 여자라 생각했는데 배포도 크시네요" 라며 웃는다.
이해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 을 출간했다.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선상에서 뒤로 뒤로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이 강물은 다음에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할지라도 그때 그 강물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가고 멀어지고 사라져 간다. 나의 삶, 나의 인생, 나의 젊음도...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쳤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나를 지키려고..'.나는 이런 사람이야 ' 라는 내가 만든 나를 무너트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를 저었다. 나는 이제 노를 놓아버리고 싶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던 무슨 상관이야. 진짜 스쳐가는 사람들인데... 내가 간 큰 여자라고? 내가 아무 것도 혼자 못하는데..이 위험한 지역 이집트에 혼자 여행을 온 나를 보고 간이 크다고 생각했을까? 어차피 남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데 왜 나는 그렇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보이려 그리도 아둥바둥 했을까?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으로 남기위해 완벽함을 기하려고 애쓰던 나를 나일강에 밀어 빠트렸다. '이제 너는 여기서 죽어줘야 겠어. 앞으로 너를 대신해서 내가 너로 살아갈거야. 어떻게 살거냐구? 지금과 다른 나로... '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 만큼 멀어져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본다. 살려달라고, 같이 가자고, 허우적 거리는 나는 나일강 하구로 하구로 떠내려 가며 밑으로 밑으로 가라 앉는다. 영화 '리플리'에서 톰 리플리가 디키를 죽이고 디키로 살아갈 것을 결심한 것처럼 나일강을 따라 오르는 나일 쿠르즈 선상에서 나는 결심한다. 나는 이제 '다른 나'로 살기로 결심했다. 가난한 톰 리플리가 백만장자 디키의 삶이 부러워서 디키를 죽이고 디키가 되어 살고자 한 것처럼 , 나는 다 갖춘 삶, 더 바랄 것이 없이 완벽해 보이는 교수님을 죽였다. 허점 투성이며 아무 것도 혼자할 줄 모르고, 심지어 잘 나가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자식들에게 손벌리는 노후를 살지 않고자 강물 밑에서 열심히 발을 젖고 있는 백조임을 감추지 않는 나로 살기로 했다. 내가 일부러 감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일부러 이야기를 한다. '남편요? 저 남편 없어요' 나보다 듣는 사람들이 더 당황하지만, 나는 정말 편해졌다. 비로서 나는 자유를 얻었다.
에그앤올리브
행복한 삶에 진심!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귀여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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