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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수확일지 #1. ]어쩌다 금손이 되었다.
파초청녀23. 03. 29 · 읽음 119

저번주 토요일, 벼르고 벼르던 당근수확에 나섰다. 사실 도심 아파트에 달린 자그마한 베란다 속, 더 자그마한 화분과 스치로폼에서 키우던 당근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뽑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쉽사리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아마 걱정과 아쉬움이 적절히 섞인 마음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이미 파종한지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 이제는 진짜 마주해야할 시간이었다. 날이 더 뜨거워지기전에, 잎사귀가 더 말라가기 전에. 아이들과 때마침 오신 친정엄마까지 같이 우르르 베란다로 나갔다. 얼마전 물주는것을 깜박해서 축 쳐져있던 당근잎은 다행히 엊그제 듬뿍 준 물을 마시고 다시 살아난 모양이었다. 어떤걸 먼저 뽑을까 하고 두 화분을 번갈아 보는데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많은 감정이 스쳤다. 그래서 친정엄마께 수확 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진을 찍은후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갔다. 

 

먼저 화분에 있는 당근을 뽑으려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화분이 생각보다 깊었고, 작년 첫 당근 수확 후 돌과 같은 걸림돌들을 다 제거했더니 당근이 생각보다 길~쭉하게 자란탓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 나무젓가락! 손톱으로 긁어볼까 했지만 이미 한번 손톱이 뒤집힌 경험이 있기에 바로 젓가락으로 흙을 살살 긁어내기 시작했다. 긁어내고 긁어내고 또 긁어내고 계속 긁어냈다. 적당이 긁어냈다고 생각했을 때 몸체를 잡고 힘껏 당겼지만 실패! 다시 긁기 시작! 긁어내고 긁어내고 또 긁어내고 긁어내니 당근의 허리자락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잡고 뽑으니 드디어 나왔다! 상품성있는 당근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우리가 아는 당근의 모습을 한 귀여운 당근. 짜잔!

 

작년에 처음 당근을 수확했을 때 당근이라기보다는 못생긴 인삼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이번에도 별 기대없이 뽑았던 딸은 자신이 뽑은 당근을 보고 깜짝놀랐다. 그러면서 진짜 당근이 나왔다며 동그래진 눈으로 한참을 당근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큰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누나가 수확에 성공한 모습을 본 아들은 조바심을 냈는지 자신도 해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 모습을 본 친정엄마가 화분보다는 비교적 쉬운 스치로폼쪽으로 데려가 같이 뽑으시기 시작했다. 흙도 깊지 않고 애초에 배양토를 구입해서 채워넣었기에 쑥쑥 뽑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역시 흙이 깊지 않아서인지 몽당 당근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들은 쑥쑥 뽑히는 당근이 신기했는지 할머니와 함께 스치로폼에 있던 당근 대부분을 뽑았다.

 

 

그 사이 딸도 터득한 나무젓가락 공법으로 화분에서 길~쭉한 당근을 꽤나 많이 뽑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수확은 짜잔! 아래와 같다.

 

집 마당에 작은 텃밭을 가꾸시는 친정엄마도 잘키웠다고 말해주실만큼 스치로폼에서 큰 당근들은 살이 오동통올랐고, 화분에서 키운 당근들은 키가 잘 자란 모습이었다. 사실 이전에 처음 당근을 키웠을 때만큼 애지중지 하지도 못했고, 물도 드문드문 주었고, 그 추운 겨울에 베란다에 방치하기도 해서 내가 다 키웠다고 말할 수는 없고, 결국은 이 녀석들이 잘 살아남았다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대단한 녀석들. 녀셕들의 생명력을 진짜 존경한다. 

 

혼자보기 아까워 여기저기 당근자랑을 했더니 누군가 그랬다. "와! 이게 집에서 가능해? 금손이네 금손" 살면서 한번도 금손이라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는데, 요 귀여운 당근녀석들 덕분에 금손이라는 말을 다 들어봤다. 수확한 당근은 남편이 깨끗이 씻어주었다. 

 

잔뿌리와 흙을 걷어내고, 풍성했던 머리채까지 다 벗겨내니 요렇게 예쁜 주황색의 맨들맨들한 녀석들의 맨몸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의 또다른 고민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귀한녀석들을 어떻게 먹어야할까. 하지만 언제나 나의 든든한 요리지원군인 친정엄마덕에 고민은 금새 사라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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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청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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